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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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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63) 김참 시인이 찾은 진주 인사동 골동품 거리와 진주성

시간이 멈춘 이곳에선 추억과 역사가 머문다

  • 기사입력 : 2013-09-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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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 인사동 골동품 거리에 있는 옹기와 돌하르방.
    인사동 골동품 거리의 절구
    진주성 공북문
    진주성에서 바라본 남강
    촉석루






    여름의 열기가 아직 식진 않았지만 가을은 벌써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한가위다. 어렸을 땐 무척 기다려지던 명절이지만 지금은 어릴 적만큼 설레진 않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생각해 보면 세월은 강산이 여러 번 변할 만큼 많이도 흘렀다. 횡단보도를 건너 진주 인사동 골동품 거리로 걸어간다. 어렸을 때 흔히 보던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이제는 골동품 골목을 채우고 있다. 골동품 가게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가 절구들과 항아리들, 돌하르방과 오래된 석탑으로 빼곡한 어느 골동품상 뒤뜰을 보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절구엔 물이 고여 있고 부레옥잠이 떠있다. 돌을 깎아 만든 제법 큰 두꺼비 뒤엔 커다란 항아리가 있고 항아리 위엔 나무가 자라는 화분이 올려져 있다.

    거리는 온통 항아리들로 가득하다. 차도 옆 보도에도 골동품가게 빈터에도 거꾸로 쌓인 옹기들이 즐비하다. 저 옹기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검은빛이 도는 것부터 짙은 갈색, 옅은 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을 가진 옹기들, 한때는 간장이며 고추장, 된장, 김치들로 가득했을 항아리들, 텅 빈 채 서로 몸을 기대어 오후의 햇살을 한껏 빨아들이고 있다. 저 항아리들 중에는 어릴 적 우리 집 장독대 한구석에 있던 것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인사동 거리를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오래된 물건들을 보게 된다. 진열장에 전시된 도자기며 접시, 제기 따위와 길가에 놓인 화로, 구유, 기와, 물레방아, 돌을 깎아 만든 인물상과 각종 동물상, 돌로 된 오래된 장기판, 그리고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오래된 물건들. 그 가운데 내 눈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무쇠로 만든 제법 큰 수동 선풍기다. 한눈에 봐도 페달을 밟아 톱니를 돌리고 그 톱니에 맞물린 다른 톱니가 돌아가며 바람을 일으키게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반백 년 나이는 됨직했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수동선풍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길가에서 자라는 잡초와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오래된 선풍기, 나이만큼 녹이 많이 슬어 있었지만 지금도 페달을 밟으면 시원하게 돌아갈 것 같다.

    인사동에서 진주성으로 가는 길의 보도블록은 특이하다.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쉬지 않았다면 이 보도블록이 맷돌들로 된 것인 줄 몰랐을 것이다. 초록색 키 작은 잡초들이 맷돌 사이사이를 비집고 자라고 있다. 자세히 보면 맷돌의 모양과 크기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채롭다. 콩을 집어넣었을 맷돌 중앙의 작은 구멍에서부터 맷돌의 가장자리까지 빗살무늬를 새겨 넣은 것도 있고, 작은 구멍이 숭숭 나있는 것도 있으며, 아무런 무늬나 장식이 없는 것도 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저 맷돌들은 한 마을에서 오랜 동안 얼굴을 보며 살았던 다정한 이웃들의 것끼리 붙어 있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사람은 가고 없어도 맷돌은 남아서 정다웠던 옛날을 기억하고 있겠지.

    맷돌로 만든 보도블록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연둣빛 잔디밭 뒤에 진주성 성벽이 보인다. 소나무 한 그루 햇살을 받으며 서 있고 작은 대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잔잔한 파도 소리를 낸다. 붉은 깃발들이 성벽 위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법 높은 문루가 있는 공북문을 통해 진주성 안으로 들어가 본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 짙은 초록을 뽐내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서 있고 성내의 누각과 사찰, 종각의 위치를 알려주는 갈색 팻말도 보인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간다. 나는 성벽 아래로 흐르는 남강을 내려다본다. 아치형 다리 아래로 강물은 천천히 흘러가고 바람이 불고 작은 새 몇 마리 바람을 타고 공중을 흘러다닌다.

    진주성은 고려 말 우왕 5년에 진주목사가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해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고, 임진왜란 1년 전에 경상감사가 외성을 쌓았으나 지금은 외성의 흔적은 없고 내성만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1592년 왜군 2만이 침략해 오자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800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 모아 물리쳤다. 이것이 임진왜란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진주대첩이다. 하지만 다음해에 왜군 10만이 다시 침략해 오자 성을 지키던 7만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슬픈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70년대 성을 정비하는 사업을 하면서 성 안에 있던 민가가 헐리고 성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성 밖으로 나가서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성 내부에 민가가 남아 있고 사람들이 여전히 성 속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한 제말 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의 공을 새긴 쌍충사적비를 지나 촉석루를 향해 걷는다. 촉석루로 올라가는 계단에 나란히 놓인 신발들 옆에 내 신발도 벗어두고 누각에 올라간다. 지붕을 받치는 나무에는 금빛 용이 초록의 구름 위에서 노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검은 나무판들에 옛 사람들이 남긴 시문들이 새겨져 있다. 천장 주변엔 시문을 써놓은 나무판들이 제법 많다. 촉석루는 천장과 천장을 받치는 나무 기둥에 새긴 그림과 단청의 문양들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촉석루 내부에 새겨 넣은 화려한 단청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끝없이 불어온다. 마루에 누워 남강과 진주 시내를 보고 바라본다. 나무에 걸린 해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구름은 공중에 떠 천천히 흘러간다. 남강에서 촉석루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바람을 맞으며 촉석루에 비스듬히 누워 하늘빛을 그대로 담은 잔잔한 남강을 내려다본다. 강 옆으로 짙은 초록의 잎을 단 나무들, 그리고 나뭇잎 색과 같은 초록빛 풀들, 강의 이편과 저편을 이어주는 다리 너머로 보이는 주택들과 높은 건물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의 유리창 안에서도 남강이 내려다보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유리창 안에서 남강의 강물을 바라보았을까? 강물을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이야 제각각이겠지만 촉석루 난간에 기대어 강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잔잔히 흐르는 강과 마찬가지로 편안하기만 하다.

    촉석루 옆에는 의기사(義妓祀)가 있다. 의기사는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시는 사당으로 1739년에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의암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일화는 유명하다. 420년 전 열손가락 마디마다 가락지를 낄 때 논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의기사 앞에 서서 은은한 색이 도는 한복을 입은 논개의 초상화를 본다. 논개의 초상화는 사람의 눈길을 오래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 누가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공력이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눈길을 돌리니 영정 앞 좌우편으로 병풍이 있고 영정 앞에는 향로가 있고 향로 양편에 두 개의 촛대가 서 있다. 논개의 초상화를 보는 동안 이곳이 사당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의기사 뒤편으로 걸어가보니 석양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벌써 저녁이 찾아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의기사 계단을 밞고 내려와 산책을 나왔다 돌아가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촉석루를 나온다. 진주성 동문인 촉석문으로 진주성을 빠져나온다. 진주성 안과 밖은 약간 다른 세상인 것 같다. 진주성 안에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지만 진주성 밖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뭐가 그리 바쁜지 사람들은 총총걸음으로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글·사진=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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