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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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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118) ‘1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나’를 다잡는 마음 ‘느린 우체통’에 부치다

  • 기사입력 : 2013-09-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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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김중근 학생이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부친 뒤 인증샷을 찍고 있다.


    보통우편 요금은 현재 얼마일까요? 편지를 부쳐 본 지 오래된 분들은 선뜻 답하기 어렵죠? 지난달 1일부터 270원에서 300원(국내 25g 기준)으로 올랐거든요. 지난주 창원대 신문방송학과의 어느 과목 글쓰기 과제가 ‘1년 뒤의 나에게 쓰는 편지’였다네요.

    학교 근처 ‘창원의 집’에 있는 ‘느린 우체통’에 넣어 1년 뒤 받아볼 수 있게 하고, 확인용으로 편지글을 교수 메일로 제출토록 했답니다. 대학생들에게 편지 쓰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학생들의 양해를 얻어 일부 내용과 함께 소개할까 합니다.

    학생들은 처음엔 이런 과제를 해야 하는 게 싫었나 봅니다. 억지로 쓴 듯한 편지도 눈에 띄었지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고 의미를 적어 놓은 편지도 많더군요.

    ☞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평생 이런 편지를 안 썼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참 특이한 과제를 낸다고 생각했지만 편지를 쓰는 지금도 이 편지를 읽을 1년 후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1년 후에 이 편지를 읽으면서 ‘1년 전 이 편지를 쓰면서 내 스스로에게 한 말들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내가 이렇게라도 나아졌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2학년 김남혁)

    ☞ 나에게 쓰는 편지, 아 오글거려! 막 쓰고 싶은데 교수님이 읽는다고 생각하니까 음, 못하겠네.(…) 그치만 조금 색다른 경험이네 이것도. 재밌다, 이렇게 적고 보니까…. (2학년 최민서)

    ☞ 네가 이 편지를 받아볼 때쯤이면 넌 벌써 3학년이다야.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노? 100% 내 자의가 아니라 과제로 나에게 편지를 쓴다는 게 조금은 걸리지만 그래도 1년 후에 볼 응원의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1년 동안 나에게 조금이나마 자극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기쁘다. (2학년 강민현)

    편지 내용은 대체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학교생활을 새롭게 해보려는 다짐이 주를 이루고 있었어요. 아마 1년 뒤에 이 편지를 받아보게 되면 또 다른 반성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 메시지가 담겨 있었답니다. 특히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내용도 많아 편지 쓰기 과제의 취지는 살린 것 같네요.

    ☞ 지금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아무 목표도 없이 살았던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년 뒤에 나는 이 편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후회만 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무언가를 이뤄놓고 편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읽게 될까?(…) 부모님께 잘하자. 솔직히 내가 부모님 속 썩인 것 생각하면 죄송스러워 죽겠는데. 꼴에 경상도 남자라고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표현도 못하고 있잖아? (3학년 강민구)

    ☞ 지금의 넌 학업에 충실하지? 그래 그만 놀고 이제 공부 좀 하자. 좋은 직장을 얻어야지. 그치? 편지 보고 부모님한테 사랑한다고 한마디만 해드려. 너 쓸데없이 부끄럼 많아서 그런 말 잘 못하잖아. (2학년 김중근)

    ☞ 후회도 만족도 많은 지금의 나는 술을 한 잔 먹고 미래의 나한테 편지를 쓰고 있어. 맨 정신으로는 현실의 나를 직시하고 미래의 나한테 조언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았어.(…) 네가 진실되고 최선을 다해 뭐든 열심히 한다면 너는 꼭 성공할거야. (2학년 김수경)

    4학년이 쓴 편지엔 취업 걱정으로 불안해하는 마음과 내년엔 잘 되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교차하고 있어요.

    ☞ 지금의 나는 이렇게 주어진 과제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취업에 대한 걱정과 빨리 과제를 끝내고 또 어떻게 자기소개서를 잘 쓰지 하는 고민뿐이구나. 조급해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해봐도 잘 안 되는 시기이고, 막연한 내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어. 휴~ 지금은 이렇게 암울한 나날들이 계속되지만 이 편지를 받는 너는 행복한 나날들의 연속이길 바라. (4학년 A)

    ☞ 은행원, 공무원…. 현실적인 직업을 찾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너도 마찬가지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있어. 네가 진짜 하려는 것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느낌이었거든.(…) 너 자신을 돌아보니, 많이 지쳐있는 것 같고 후회되지? 너의 인생이고 너의 삶이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볼지, 어떻게 생각할지에 초점 맞추지 말고 오로지 너의 시선으로 너의 인생을 만들어 보자. 그게 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말일 것 같아서. (4학년 B)

    미래의 꿈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자신을 질타하며 마음을 다잡는 글과,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자신을 다그치며 편지를 쓰는 이유를 밝힌 글에서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엿볼 수 있네요.

    ☞ 가장 걱정되는 것은 나의 꿈이야. 그때쯤이면 확실한 꿈을 정했을 수도 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것 같아.(…) 내가 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적으며 나에게 맞는 일들을 되짚어봐. 물론 그 목록들이 의미 있게 채워지도록 내가 1년 동안 많은 노력을 할게. (2학년 박미란)

    ☞ 그 꿈 많던 용기 있던 1년 전의 니는 어디로 갔는데? 공부는? 일은? 돈은? 내가 이렇게 처음부터 니를 몰아세우는 이유는, 여전히 뭔가 미루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지금부터 내가 이제 1년 뒤에 뭘 하고 있어야 하는지 기준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써본데이. (2학년 조돈식)

    ☞ 넌 게으른 거 고칠 필요가 있어. 그거만 고친다면 넌 지금보다도 훨씬 성숙하고 멋진 여성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년에 이 편지를 받았을 땐 “난 이미 부지런해졌는걸?”이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 (2학년 C)

    대학 2학년의 풋풋함을 솔직히 드러낸 편지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려는 의욕도 넘쳐나 있어요.

    ☞ 난 돈이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아직 남자친구도 안 사귀어 봤고, 클럽도 안 가보고, 여행도 못 가봤지만, 못해 본 거 무서워서 도전해보지 못한 거 다 해봤으면 좋겠어. (2학년 양진)

    1년의 의미를 생각하며 값진 시간으로 채우려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편지도 있답니다.

    ☞ 1년이라는 시간 정말 짧다. 하지만 정말 길고도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지. 너는 앞으로 1년을 하루같이 사는 그런 남자가 되었으면 한다. 1년 전보다 더 멋진 남자가 되어 있길 바란다. (2학년 이정헌)

    오늘 논술탐험은 대학생들이 1년 뒤의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주제로 다뤄 봤어요. 비밀 일기를 쓰듯 진솔한 마음이 담긴 표현도 많았지만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여기엔 공개하지 않았어요. 논술 잘 쓰는 법? 글을 잘 쓰는 법? 직접 써 보는 게 최고의 실습이랍니다. 이 가을에 손글씨로 쓴 편지를 1년 후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에 부쳐 보는 건 어떨까요. 300원짜리 우표 붙여서.

    편집부장 s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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