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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7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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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65) 김승강 시인이 찾은 사천 비토섬

둥실, 달 뜨면 설화의 세계가 열리는 섬

  • 기사입력 : 2013-10-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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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토섬 갯벌
    비토섬에서 바라본 노을
    비토섬에서 바라본 비토교
    비토섬


    달은 비토섬을 설화의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멀리 남해 망운산이 보인다.

    밤이 문제다. 항상 밤에 내 이성은 무너진다.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저)를 읽는다. 나는 스승(선생)이 없다. 내가 내 스승이라고 생각해 왔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 누구의 스승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과연 나는 밤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오른손 약지 손톱이 깨졌다. 밤이었다. 밤은 술을 부르고 술은 내 손톱의 탄력을 떨어뜨렸다. 오른손 약지 손톱은 트레몰로 주법(클래식 기타의 한 주법) 연습에 매우 중요하다. 손톱이 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방 한쪽에 우두커니 선 기타에게 미안하다. 기타는 안기고 싶어 안달이다. 나도 기타를 제대로 안고 싶다. 자전거가 내 아들이라면 기타는 내 딸이다. 현관에 세워둔 자전거는 서서 자는 말처럼 말없이 서서 밤을 지키고 있다. 나는 밤에 섬이 된다. 내 섬에는 세 식구가 산다. 나와 기타와 자전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섬’


    수많은 섬들의 이동을 보았다. 천만이니 이천만이니 했다. 그 섬들은 일정한 곳에 모여 있었다. 섬과 섬 사이에는 작은 골목길들이 핏줄처럼 얽혀 있었다. 그 골목길 어귀 나를 닮은 섬에서는 슬픈 기타 곡조가 흘러나오고는 했다. 그런 섬들이 일시에 길을 나섰다. 섬들의 대이동. 장관이었다. TV에서는 그 광경을 생중계했다. 섬들은 저마다 고향이 있었다. 어쩌다 흘러들어와 사는 곳을 떠나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건 연례행사였다. 그 연례행사를 통해 섬들은 새로운 힘을 얻었다.

    달리 ‘대이동’에의 동참이 필요 없는 나는 2013년 9월 20일, 차오르던 달이 정점을 찍고 기울기 시작하는 추석 다음 날 섬으로 떠났다. 비토섬. ‘섬들’은 귀성을 끝내고 귀가하고 있었다. 귀성길이 그랬듯 귀갓길도 장관이었다. TV에서는 생중계를 계속했다. 나는 내 안의 섬을 떠나 내 밖의 섬으로 떠났다. ‘내 아들’ 자전거와 함께였다.

    사천에서 남해고속도로에서 내려 국도 3호선을 타고 삼천포로 가는 동안 나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한때 사천에 살았었다. 오랜만에 찾은 사천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기시감(旣視感)에 시달렸다. 아니 기시감이라기보다는 기시감과 비기시감 사이의 혼란쯤 되었다. 기시감이란 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면, 비기시감이란 본 적이 있는데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그때의 사천을 경험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시감이 맞다. 그러나 나는 과연 사천에 전혀 와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사천은 경험이 없지만 예전의 사천은 경험이 있으니 기시감이 아니다.

    그때 아내와 나는 일을 마치면 종종 국도 3호선을 타고 삼천포를 향해 달렸다. 왼쪽으로는 와룡산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우뚝 섰고 왼쪽으로는 저 아래로 넓은 들판을 지나 사천만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달릴 때 사천만을 끼고 건너편에서 함께 달리는 것이 있었으니 서포였다. 조금 일찍 나온 날에는 서포가 거느린 많은 섬들 너머로 석양이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찾는 곳은 사천 삼천포 간 국도 3분의 2 지점 오른쪽 들 한가운데 선 한 주유소였다. 그 주유소는 고속도로 휴게소만큼의 크기는 아니지만 주유소치고는 아주 컸다. 그 한쪽에 있는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서포 위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그날 있었던 일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아내와 싸운 어느 날 나는 서포를 찾았다. 사천 들에서 바라보던 석양이 지던 서쪽 땅 서포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뒤 아내와 싸운 날이면 혼자 서포를 찾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오고는 했다. 그때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곤양에서 내려 서포로 들어갔다. 이제 그 주유소에서 서포쪽을 바라보던 바로 그 시선 방향으로 사천과 서포를 잇는 다리가 생겼다. 사천대교다. 사천대교 덕분에 서포 속살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천대교를 다 건너면 바로 터널이 하나 나오는데, 터널을 들어서기 직전 왼쪽편에 사천만을 조망할 수 있는 휴게소가 나온다. 돌아오다 그 휴게소에 들러 서포에서 삼천포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혼자였다.

    비토는 서포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비토교다. 비토교는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데, 저 멀리 서쪽에 보이는 남해 망운산 위로 달이 떠오를 때 서포를 건너면 마치 설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비토섬은 유명한 설화의 발원지다. 그 아름답고도 슬픈, 슬프고도 아름다운 설화는 이렇다.



    서포면 비토, 선전리 선창과 자혜리 돌끝을 생활터전으로 많은 토끼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편토끼가 용궁에서 온 별주부의 감언이설에 속아 용궁으로 가게 되었다. 용궁에 들어가게 된 토끼는 거짓을 알아차리고 ‘한 달 중 달이 커지는 선보름이 되면 간을 떼내어 말리는데, 지금이 음력 15일이라 월등도 산중턱 계수나무에 걸어두고 왔다’고 말했다. 토끼의 말을 들은 용왕은 다시 육지로 데려다 주라고 별주부에게 명했다. 월등도 앞바다에 당도한 토끼는 달빛에 반사된 아름다운 육지를 보고 성급히 뛰어내리다 바닷물에 떨어져 죽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 토끼 모양의 섬이 생겨났다. 토끼를 놓친 별주부는 용왕에게 벌 받을 것을 걱정하여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거북 모양의 섬이 되었다. 한편 부인토끼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바위 끝에서 떨어져 죽어 돌끝 앞에 있는 섬이 되었다. 이때 생겨난 섬들이 바로 비토섬에 위치한 토끼섬, 거북섬, 목섬이다.

    비토섬의 밤은 비현실적이었다. 멀리 남해의 망운산으로 방금 만월의 정점을 찍은 달이 둥실 떠올라 낮 동안 속살(개펄)을 열어보였던 바다 위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섬들’을 생각했다. ‘섬들’은 모두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했을까. 지금쯤 꿈같이 짧았던 귀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한 차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음 날 오전 나는 비토교를 건너 나의 현실로 돌아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나는 정말 비토섬에서 일박을 했던 것일까? 설화의 섬 비토섬에서 일박한 나는 누구며, 지금 여기 현실 속의 나는 누군가?



    어느 날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자신이 장자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불현듯 꿈에서 깨었다.

    깨고 보니 자신은 나비가 아니라 장자가 아닌가.

    장자는 생각에 잠겼다.

    아까 꿈에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나는 내가 장자인지 몰랐다.

    지금 꿈에서 깨고 보니 나는 분명 장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 <장자 제물론(濟物論)> 중의 ‘장자의 꿈’


    글·사진= 김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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