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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아동학대방지 특례법 제정에 즈음하여 - 허영희 (한국국제대 경찰행정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13-12-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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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은 그 어느 해보다 흉악범죄가 많이 발생했던 터라, 이제는 웬만한 사건들은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정도로 무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힘없는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와 이로 인한 참혹한 사망사건은 범죄에 무감각해지는 우리의 뇌를 흔들고 있다.

    울산에서는 계모에게 수차례 폭행당한 8살 아이가 갈비뼈가 16개나 부러져 사망하는가 하면, 서울에서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골프채로 맞은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춘천에서는 베이비시터에게 17개월 아기가 머리를 맞은 사건이 있었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이미 2년 전부터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1만 건이 넘었다.

    방어능력이 부족한 힘 없는 아동에 대한 학대는 폭력의 되물림, 자살, 사망 등과 관련돼 있다. 따라서 가정 내 사건이나 아동 훈육 방법 중 하나라고 간단히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현행법과 제도는 낙제 수준이다.

    현행법은 자기 보호 능력이 약한 아동을 때릴 경우 어른을 때릴 경우보다 처벌수위를 더 낮게 규정하고 있다.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 피해자를 격리시킬 필요가 있는데, 현행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법원이 친권행사를 제한하기 전까지는 가해자인 부모가 아동을 데려가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에 법 개정과 함께 특별법 제정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정쟁의 뒤편으로 밀려나 1년2개월이 넘도록 방치돼 오다가 지난 23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된 아동학대방지 특례법안은 아동을 유기하거나 보호와 양육, 치료, 교육 등을 소홀히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고, 학대행위로 인해 아동의 생명에 위험이 발생하거나, 해당 아동이 불구 또는 난치의 질병을 얻게 될 경우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상습적 아동학대범에 대해서는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 동참해왔던 필자로서는 누구보다도 기쁘지만, 이와 함께 병행돼야 할 사안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법 제정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동학대 문제는 처벌을 강화하는 법 제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학대하는 사람들의 버르장머리는 처벌만으로 교화가 어렵기 때문에 상담이나 치료, 교육 등을 통해 이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의 상담과 치료를 담당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턱없이 부족하고, 인력조차 확보되지 않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5000만 명에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인력이 400명에 불과하다. 인구 2600만 명인 미국 텍사스주의 경우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인력이 1735명이라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사법부의 엄중한 법집행 의지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모에 의해 소금밥에 대변까지 먹다가 사망한 아이의 친아버지는 무죄로 풀려났고, 23개월 된 남아를 폭행해 숨지게 한 어린이집 원장 부부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처럼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는 한, 처벌 형량을 강화한 법 제정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입법화는 결코 해를 넘겨서는 안된다. 이와 함께 사법부는 아동학대자를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법집행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부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증설과 관련 인력 확충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여 아낌없이 집행해야 할 것이며, 이달부터 시행되고 있는 아동학대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명단공개제도가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의 아이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학대를 알게 되거나 의심되는 경우 주저 없이 신고해야 할 것이다.

    허영희 한국국제대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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