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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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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84) 김참 시인이 찾은 밀양강과 영남루

영남루 천진궁은 일제 헌병이 쓰던…
모진 세월 의연하게 견딘 너
밀양강 너른 품 힘이 됐구나

  • 기사입력 : 2014-02-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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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교에서 바라본 영남루.
    영남루 현판
    영남루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시가지
    천진궁




    고속도로를 따라 밀양으로 가는 길은 국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하지만 순식간에 차는 밀양 시가지에 도착한다. 밀양 재래시장에 있는 보리밥집을 찾아가 아내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배가 부른 아내의 출산예정일은 이달 26일, 나도 곧 아빠가 된다. 친구들의 아이들은 곧 중학생이 되는데, 아내와 나는 결혼이 늦었다. 뱃속의 아기가 발로 아내 배를 차면 아내는 아기가 뽈록뽈록 한다고 좋아한다. 수제비를 덤으로 주는 보리밥은 맛이 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가끔 가는 집 근처 국밥집에서 나오는 김치와 달리 제대로 된 김치가 나왔다. 어릴 적 고향 외가에서 먹던 외할머니의 김치 맛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시장 구경을 하면서 쑥떡과 딸기, 파, 병에 든 유자차 따위를 사서 시장 근처에 세워둔 차에 놓고, 아내와 함께 영남루를 향해 올라간다. 일요일 오후, 날은 흐리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있다. 입춘이 지났지만 날은 여전히 춥다.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누각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영남루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밀양군수가 신라시대의 절 영남사 터에 같은 이름의 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영남루는 여러 차례 증축이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때에는 화재도 겪었지만 1844년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누각은 사방을 넓고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게 지은 집이다. 누각은 경치가 좋은 곳에 세워진다. 계곡 근처 절벽이나, 강을 마주한 언덕 위, 호수나 바다 근처가 누각이 설 만한 곳이다. 누각은 공공의 장소였다. 여러 사람이 모여 연회를 하거나, 친목을 도모하거나, 학문을 논하던 곳이 누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각은 사적인 장소의 성격이 강한 정자에 비해 규모가 크다.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의 둘레만 보아도 누각을 세우는 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누각으로 올라가는 층계 기둥 위에 걸린 현판을 본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지만 고색창연한 멋이 느껴진다. 비바람을 견뎌온 세월의 흔적이 누각의 곳곳에 남아 있다.

    영남루는 영남제일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웅장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 누각의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높은 곳에 올린 것은 멀리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넓은 마루의 기둥 옆에 서서 밀양강 너머 보이는 시내를 본다. 구름 낀 하늘과 하늘 아래 펼쳐진 산, 그리고 제법 높은 고층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각에서 경치를 구경하던 옛사람들은 밀양강과 그 너머 자리 잡은 야트막한 집들이 있는 마을을 바라보며 시를 읊기도 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이 영남루를 읊었던 시 가운데 아직 전해지고 있는 것도 제법 있다고 한다. 그들은 밀양강 너머에 콘크리트로 된 아파트와 건물들이 들어 설 줄은 몰랐을 것이다. 누각 난간 근처에서 바라본 시가지는 흐린 날씨 때문인지 우중충해 보인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겨 약간 어두운 누각 내부에서 바라본 강 건너의 건물들은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똑같은 풍경이라도 보는 방향과 각도, 날씨와 그리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 보이는 법이다.

    영남루는 촉석루보다 웅장하지만, 관리가 잘된 촉석루에 비해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영남 제일의 누각치고는 보존 상태가 썩 좋지 않다고나 할까. 기둥은 갈라진 데가 많고 단청도 칠한 지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희미한 곳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단청도 새로 칠하고 군데군데 손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루가 낡아서 위험하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끈으로 기둥을 묶어서 출입을 막은 곳도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각에서 내려와 뜰을 거닐어본다. 영남루 화단 근처에 세워진 드라마 주인공 사진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몇 해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아랑사또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둔 것 같다. 걸어다니다 보니 눈에 잘 들어오기는 하는데 누각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여행 중에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면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영남루 내부에는 누각과 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이 몇 개 있다. 그중에 눈을 끄는 것이 천진궁(天眞宮)이다. 천진궁으로 가기 위해 만덕문(萬德門) 안으로 들어간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천진궁은 조선 현종 6년(1665년)에 세워졌다. 원래는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시던 공진관의 부속건물이었으나 경종 2년(1722년)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위패를 보관하며 객사를 겸하였다. 천진궁에는 중앙에는 단군 영정과 위패가 있고, 그 왼쪽 벽에 부여, 고구려, 가야의 시조와 고려 태조의 위패가, 오른쪽 벽에는 신라, 백제의 시조와 발해 고왕, 조선 태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천진궁은 일제강점기에는 헌병대가 사용했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땅에 묻고 감옥으로 사용했던 천진궁, 그런 민족 수난사를 되새겨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힘들다고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아내와 함께 영남루를 내려온다.

    밀양강이 아래로 흐르는 다리를 걸어가면서 영남루를 돌아본다. 야트막한 산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나무밭 아래의 산책로도 보이고 산책로를 따라 서 있는 가로등도 보인다. 가로등을 보니 밀양팔경의 으뜸이라는 영남루의 야경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약간 아쉽다.

    다리를 걸어 시가지 쪽으로 향한다. 다리 위에서 보는 시내 풍경은 이색적이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보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다리 옆의 인도를 따라 다리 위를 걸어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인도를 따라 오고 가는 사람이 종종 보인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는 사람도 있고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도 있다. 다리를 따라 걷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타인의 변두리를 서성대는 것이

    사는 것이라면 어차피 조건은 같다

    가야할 길 가연(架沿) 가는 길

    다리 밑 강가에 주저앉아

    한숨 돌리다 강물에게 한마디 듣는다

    찾아가려는 중심에 무엇이 있겠느냐

    걷고 걸어서 가야할 정점이

    타인의 변두리라는 걸 깨닫고 나면

    그 뒤에 또 무슨 길이 남겠느냐

    긴 여로에 터진 발뒤꿈치를 어루만지며

    비웃듯 찰랑대는 강물에서 발을 빼면

    햇빛에 반사되는 발등의 물방울이 눈을 찌르고

    올려다 본 산기슭에 걸쳐진 구름처럼

    가는 길 도중에 스며든 타인의 삶이 아득하다

    그대 삶을 가로지르는 강물과

    그 강물 언저리 작은 다리

    내가 건너온 너의 변두리 삶이

    이내 내 삶의 한가운데 강물이 되고

    다시 내 강물의 변두리를 서성대는 그대를 보며

    발을 닦고 다시 신을 신는다

    타인의 변두리에서 서성대며

    가야할 길 가연(架沿) 가는 길 - 이규열,‘架沿 가는 길 1’



    밀양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호박소로 갈 계획도 다음으로 미루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차를 몰고 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밀양강을 만난다. 낙동강을 향해 흘러가는 밀양강은 잔잔하다. 밀양강은 삼랑진 쪽으로 굽이굽이 흘러가 낙동강과 만난다. 삼랑진을 지난 낙동강 물은 흘러흘러 우리 동네와 부산의 경계가 되는 서낙동강으로도 내려온다. 졸음 때문에 창문을 열고 하품을 하며 운전하는 나에게 아내가 시장에서 산 쑥떡을 자꾸 건네준다. 물과 물이 만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의 인연도 강물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사진=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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