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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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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 (33) 나눔과 소통의 창원 길마켓

재활용·나눔·소통으로 모두가 행복한 ‘장터’

  • 기사입력 : 2014-04-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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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물건, 환경이 모두 행복해지는 ‘길’이 있다. 매일 있는 길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좀 더 특별한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여야 하고, 우거진 나무 사이로 물건 길을 만든다. 사람들이 드나들어 활기를 띤다. 서로 인사하고 물건을 주고받는다. 물건에 담긴 추억도 오간다.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성산아트홀 대극장 앞에 열리는 ‘길마켓’이 그렇다. 쓰던 물건과, 직접 만든 물건, 손이 닿은 물건을 파는 길이다. 재활용의 길, 나눔의 길, 소통의 길. 어떤 따뜻한 이름을 붙여도 좋다.

    ◆길마켓 판매자로 나서다=?옷장을 뒤졌다. 레깅스 4종세트, 형광연두색 바지, 유행은 돈다며 쟁여두었던 대학시절 옷들이 옷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큰 가방에 담았다. 창원 길마켓에서 입던 옷을 팔아보기로 했다.

    오전 10시께 성산아트홀 앞에 도착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쭈뼛거리다 판매자 줄에 섰다. 줄은 중고물품과 수공예 물품으로 나뉘었다. 물품 검사를 받고, 판매자로 등록해 판매 구역으로 A-39번을 받았다. 운좋게 의자가 있는 자리다. 돗자리를 펴고, 행거에 옷을 걸었다. 레깅스와 티셔츠는 돗자리 위에 접어 놓았다.

    두근두근. 잘 팔릴까? 걱정하는 사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옷을 보고, 가격과 사이즈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 카디건은 이 원피스랑 자주 입고 다녔어요”라면서 즉석 코디도 하고 “아가씨가 입어봐, 길이 좀 보게. 저리 돌아봐요”라는 한마디에 피팅모델이 됐다. 티셔츠는 1000원, 2000원에도 팔았다. 많이 사 간 손님에겐 사은품(?)도 줬다.

    나에게 쓸모없어진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주는 기쁨, 파는 재미가 컸다. 물품을 팔다 말고 구경에 나서, 구두와 팔찌도 샀다. 다음 달에 꼭 만나야 할 사람까지 생겼다.

    ◆길마켓은 어떻게 생겼을까=? “환경수도 창원이지만, 실제로 시민들이 주체가 돼서, ‘자발성’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물건을 맡겨 파는 게 아니라 물건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 직접 중고물품을 파는 벼룩시장(프리마켓)을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길마켓을 만든 주축인, 녹색창원21실천협의회 박찬 사무국장을 만났다.

    알고 보니 바로 옆자리에서 가족과 함께 나와 아기용품을 팔던 이다. 그는 길마켓이 생기기 전 창원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던 여러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대표적인 하나의 시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시민들의 참여가 높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아름다운가게·애기똥풀 등 10개의 단체와 손잡고 지난해 6월 처음 ‘길마켓’을 열었다.

    공원에서 하려고 했지만 공원법상 상행위가 금지돼 있어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나무그늘이 있는 안전한 곳을 찾다 성산아트홀 앞마당으로 정했다. 이번이 여덟 번째. “창원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자연스러운 소통공간이 됐으면 했어요, 서로 필요한 물건을 찾아 교환을 하면서 생활쓰레기도 줄이고요. 확실히 성과가 눈에 보이니까 좋지요. 통영, 의령, 대구에서도 와요.” 창립 10개 단체 회원들이 주축이 됐던 1회 때와 달리 이제는 대부분이 단체와 상관없는 개인들이다. 참여팀도 126팀으로 100팀이 훌쩍 넘었다.

    최소운영비를 제외하고는 판매자로부터 받은 출점비 5000원은 장애아동돕기에 쓴다. 스태프는 모두 자원봉사를 한다. 이처럼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만큼 박 국장과 길마켓은 또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제 노하우를 공유할 때가 된 것 같았어요. 사실 벼룩시장은 동네 앞에 언제든 쉽게 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자원을 절약하자고 시작한 건데 멀리서 오면 취지에도 어긋나고요. 그래서 5개 구청별로 길마켓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진해는 오는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하기로 정했어요. 아, 어린이들이 직접 자신의 물건을 사고파는 어린이 길마켓도 꼭 열고 싶어요.”

    ◆길마켓이 좋아요=? ‘하나밖에 없는 하나숍’. 친구와 밤새워 만든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옷을 팔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이름이 하나예요. 옷에 관심이 많은데 친구가 길마켓을 가르쳐줘서 나왔어요.” 하나(12·창원 반송여중 1년)는 직접 견출지에 가격을 써서 붙여놓고, 옷을 손님들에 설명했다. “용돈도 벌고, 경제개념도 생기는 것 같고, 좋아하는 옷도 많이 보고 재밌어요.” 마음에 드는 신발도 오늘 샀다며 노란운동화를 수줍게 내민다.

    큰 도자기와 조각품이 눈에 들어온다. 이은주(51·창원시 성산구 성주동)씨가 내놓은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산 마리오네트, 발리에서 갖고 온 목불 등이 있는데 오늘 늦게 와서 잘 안 팔리네요. 좋은 물건을 노리는 사람들은 마켓을 열자마자 사고 가거든요.” 두 번째 참여하는 길마켓에서 느끼는 점도 많다. “아까 아이들에게 직접 계산하게 하는 부모를 봤어요. 좋아하는 것도 직접 고르게 하더라고요. 이게 바로 살아있는 교육이다 싶었죠.”

    안태현(27)씨도 옷을 들고 나왔다. “내 물건이 저 사람에겐 어떻게 쓰일까 궁금하죠. 좀 비싸다며 돈을 놓고 그냥 가져가버리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조차 재밌어요.” 하지만 안씨는 좀더 다양한 제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넌지시 말했다. “외국에 보면 소파나 의자, 대야같이 더 크고 다양한 물건들을 많이 내놓잖아요. 길마켓은 아직 옷이 대부분이라 좀 더 규모도 커지고 다양한 제품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사진설명]? 4월 셋째 주 토요일인 지난 18일 오후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앞에서 열린 ‘길마켓’에서 시민들이 다양한 재활용품을 고르고 있다./전강용 기자/


    ◆ 길마켓 사고팔기 노하우

    ◆판매자 노하우

    ① 작은 파라솔, 그늘막텐트 등이 있으면 소나기나 햇볕을 피할 수 있어 편하다.

    ② 배경음악을 준비하면 가게 분위기가 살아난다.

    ③ 옷은 행거에 걸어두면 보기 쉽고, 판매에도 도움이 된다.

    ④ 상품에 미리 가격표를 붙여두면 편하다. 물건이 싸니까 잔돈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⑤ 상품은 종류별로 가지런히 진열해야 판매도 잘 된다.

    ⑥ 전자제품 등 기기류는 고장이 나지 않았는지 판매하기 전에 확인한다.

    ⑦ 길마켓에서는 고가의 명품브랜드 제품은 팔 수 없다.

    ⑧ 쓰레기를 담을 봉지, 판매물품을 담아줄 봉투를 준비해오면 편리하다.

    ⑨ 돗자리를 깔면 앉을 수도 있고, 물건을 놓기도 편하다. 자기 구역을 넘지 않도록 한다.



    ◆구매자 노하우

    ① 벼룩시장 특성상 교환이 힘들기 때문에 의류제품은 사이즈가 맞는지 되도록 입어보고 구매한다.

    ② 얼룩이나 터진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③ 전자기기는 호환 여부와, 건전지 등을 잘 살핀다. 작동도 시켜본다.

    ④ 구매한 물품을 담을 가방을 준비한다.

    ⑤ 물건이 대체로 싸기 때문에 1000원짜리 지폐나 동전을 준비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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