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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고운맘 되기 (14) 응급실과 어린이집, 메르스

  • 기사입력 : 2015-06-13 0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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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39℃가 넘었다. 벌써 3일째였다.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알몸의 아기를 감싸 안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창원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날이었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우리는 건강해서 괜찮다고 말했지만 창원으로 향하는 마음은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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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역시 분위기가 삭막했다. 응급실 안내직원은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가 아닌 "최근 해외여행이나 병원에 간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먼저했고, 메르스 관련 질의응답서도 작성하라고 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 축 쳐져버린 딸 아이를 안은 나는 1초가 급했고, 생각지 못한 절차에 짜증이 났다. 마스크를 쓴 채 정색을 하며 관찰하는 듯 쳐다보는 눈빛도 불편했다. 직원은 5분여에 걸쳐 규정상의 절차를 모두 마친 후 보호자의 체온까지 체크하고 응급실 문을 열어줬다.

    보호자도 1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역시 메르스 때문이었다. 불안감에 불편함, 불쾌감이 겹쳐 화가 났다. 간염을 최소화 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말 했지만, 아픈 환자와 가족들에게 지나친 것 같았다.

    결국 남편은 소아 응급실 창문 밖에 붙어서 딸을 살피며 대기했고. 그 옆에는 응급실에 들어오지 못한 아기 아빠들이 나란히 창문앞에 붙어서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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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은 피를 뽑고 정맥주사를 맞으면서 울음으로 진을 뺐고,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낯선 공간에서 혼자서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달래려니 식은땀이 났다. 괜시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모든게 어린이집 때문인 것 같았다. 딸은 지난주부터 어린이집에 갔었다. 복직을 하면서 시어머님이 딸을 돌봐주셨는데, 지난 1일부터 여러가지 사정으로 어린이집에 보내게 됐다. 생후 18개월 동안 감기 한 번 앓지 않았기에 속상함이 더 컸다.

    게다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삭막한 분위기의 응급실에서 여린 아기를 데리고 있는 일은 신경을 더 곤두서게 만들었고, 하필 이 시국에 딸이 아프다는 게 답답했다.

    다행히 해열제와 수액을 맞은 딸은 금방 기력을 회복했고, 검사 결과도 문제가 없었다. 의사는 목에 바이러스가 생긴 것 같다며 해열제를 먹이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딸의 등을 토닥이며 긴 한숨을 뱉어냈다. "이제 어린이집은 어쩌지?" 남편에게 묻자 "어쩔 수 없지 뭐, 또 아프면 또 치료받아야 되는거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어쩔 수 없어서 이것 저것 핑계를 만들며 화를 냈을지도 몰랐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수는 없는데, 그리고 메르스도 당연히 미리미리 조심해야 하는데, 괜시리 탓할 대상만 찾아댄 것 같았다.

    아픈 아이에게 써야 할 신경을 내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쓰고 있으니 두 배로 힘이 들 수밖에. 아이가 아픈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걸 보니, 초보 엄마티를 벗기엔 갈 길이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아직도 딸은 밥을 잘 먹지 못한다. 안타깝긴 해도 불안하진 않다. 딸이 병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또 덜 힘들도록 도와주는 데 힘을 쏟으려 노력하는 수 밖에, 어쩔 수 없지 않는가.

    (*그놈의 메르스 또한 마찬가지일터. 가능한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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