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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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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 청춘블루스] 청춘 6호.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

나전칠기는 나의 운명

  • 기사입력 : 2015-07-07 14: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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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또렷한데 제 머릿 속은 멍해지더군요.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전화 속 목소리는 대뜸 내 청춘의 안녕을 묻더군요. 그래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의 청춘, 나의 20대를요. 올해로 29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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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가 통영시 무전동 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실톱으로 자개를 세심하게 자르는 줄음질을 하고 있다. 양씨는 중요무형문화재 10호 나전장 송방웅 선생의 이수자이다./김승권 기자/

    그러고보니 벌써 12년이 훌쩍 지났네요. 내가 나의 길로 접어든 게 말입니다. 소개된 다른 청춘들을 봤어요. 그들은 청춘을 무기이자 담보 삼아 세상과 부딪쳐 용감하게 싸우고 있더군요.

    그들과 달리 나는, 청춘을 저축하고 있습니다. 견고한 나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의 시간, 내 청춘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중이지요. 나는 중요무형문화재 10호 나전장 송방웅 선생의 이수자입니다. 전통 나전칠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또다른 모습의 청춘이라고 소개해도 될까요?
     


    ▲평범한 삶 대신 선택한 나전칠기= 여느 아이라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을 무렵부터 내 손에는 나전공예 도구들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나전칠기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었죠.

    아버지는 지난 42년을 나전칠기에 매달리셨어요. 우리 가족을 위한 생업이기도 했지만, 나전칠공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이 아버지의 업을 이어 나전칠공예를 배우길 원하셨어요. 처음에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나전공예가 좋았습니다. 종종 심부름을 하면 용돈도 얻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죠.

    하루 이틀씩 배우면 배울 수록 나와 동생(양성미·28·여) 역시 나전공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가계가 기우는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우리가 공들여 만든 작품에 대한 대가가 제대로, 제때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았어요. 겸사겸사 아버지는 우리 남매에게 고등학교 진학 대신 아버지 고향으로 내려가 나전칠공예를 본격적으로 배울 것을 제안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감각과 자세를 익혀야 좋은 나전칠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아버지의 교육관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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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가 자개 문양을 그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선뜻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결국 전남 영암행을 택했습니다. 내가 길을 찾을 곳이 바로 나전칠공예에 있다는 생각을 어린 나이였지만 했던 것 같습니다. 나전공예를 진심으로 아끼게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하지만 막상 영암에 내려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 경제적 압박과 심리적 불안까지 겹치니 생활이 녹록지 않더군요. 지역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찾아다니며 우리의 나전칠공예품을 알렸습니다.

    전국에서 열리는 공예전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쉬지않고 달리다보니 공예전에서 수상하는 기쁨도 얻게 되고, 주문을 받게 되는 즐거움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짧은 나의 인생에 나전칠공예가 전부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쯤되면, 운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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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방웅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김승권 기자/
    ▲송방웅 선생을 만나다= 선생님을 만난 건 지난 2009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였습니다. 예전부터 송방웅 선생님과 친분이 있었던 아버지는 선생님 밑에서 저와 동생이 나전칠공예를 제대로 배우기를 원하셨어요.

    나전칠공예로 이름난 송방웅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를 받게 된 것은 제 삶에 큰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어느 빛나는 20대와 지금 나의 20대를 바꿀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랍니다. 전남 영암에 살던 당시, 우리 가족 3명은 함께 2년간 매주 통영을 찾았는데요. 되돌아보면, 왕복 8시간을 오가는 여정은 참 고단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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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가 통영시 무전동 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여동생 양성미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매우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나와 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실기 위주로 배웠다는 것을 아시고, 나전칠공예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이론을 꼼꼼하게 알려주셨고,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다양한 지혜도 빌려주셨죠.

    이를테면 어교에 쓰이는 물고기 부레를 끓이기 전에는 쌀뜨물에 담가 염분을 빼고, 부레 끓인 물을 젤리 형태가 될 정도로 굳혀 조각조각 썬 후 서늘한 곳에 말려야 한다는 것들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것은 부지런히 여쭙고 공부하며 선생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의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시는 선생님의 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무릇 장인이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니까요. 말씀 하나하나 놓칠새라 한눈을 팔 시간이 없는데요. 선생님은 나의 20대가 남들과 다르지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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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가 통영시 무전동 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송방웅 선생과 작업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다른 청춘들에게= 걱정이나 불안함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사실 거짓말이겠지요. 나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고민하면서 내 길을 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때 나를 보던 선생님과 친구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사실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불안함 보다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안정감 등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한 번도 그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루 종일 공예관에 있는 날이 많은 나는 보통의 10대, 20대가 즐기는 삶과 문화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를 즐겁게 하고, 계속 열정을 쏟아붓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 내 뒤로 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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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가 통영시 무전동 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자개를 꼼꼼하게 붙이는 끊음질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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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가 통영시 무전동 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자개를 꼼꼼하게 붙이는 끊음질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금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 그래서 행복한가요?' 이 물음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게 사는 것이 진정한 청춘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들에게 내 동생 성미에 대한 얘기도 해주고 싶어요. 성미도 나 못지 않게 나전공예에 대한 애정이 깊은데요. 내가 나전공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려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느라 고단할텐데도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에는 빠짐없이 공예관에 나와 함께 공부를 합니다. 열정과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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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김승권 기자/
    ▲'양성근' 넌 잘하고 있어= 나는 나전공예를 사랑합니다. 29살, 지금의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한 발 한 발 내가 계획해놓았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어찌 사는지 연연할 필요가 없고 부러울 이유도 없지요. 나의 미래, 나전칠기의 미래도 밝다고 생각합니다.

    나전칠기는 목공예, 칠공예, 나전공예, 금속공예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자 우리나라에만 있는 민족공예입니다. 나전칠기를 하나의 공예품이나 상품으로 접근하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 사명감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큰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삶을 던져 전통의 명맥을 잇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의 몫이라 할지라도 전통을 지켜가는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의무일테니까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에 반해 찾게 만드는 것은 내가 할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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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전장 이수자 양성근씨가 통영시 무전동 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여동생 양성미씨와 작업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내가 더욱 연마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8월, 중요무형문화재 10호 나전장 이수증을 가슴에 안았습니다. 앞으로 4년을 열심히 저축하며 공부하면 전수조교가 되어 나전장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한 번 장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방을 지켜야한다." 선생님은 이 말을 철칙으로 삼고 실천 중이시죠. 선생님의 말씀은 백 번 옳습니다.

    선생님이 그러하시듯 나 역시 청춘을 이 공방에서 울고 웃으며 보내다 보면, 나전칠공예에서 모두의 인정을 받고 내가 사랑하는 나전칠기 전통의 명맥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멀지 않은 미래, 통영시 무전동 전통공예전수관에 들러주세요.

    이 공방에 앉아 한국을 대표하는 나전장으로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이 기사는 인터뷰를 토대로 기자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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