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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풍수지리] 금계포란형의 명당

  • 기사입력 : 2016-0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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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택풍수(陰宅風水·무덤풍수)와 양택풍수(양택풍수·산 사람이 생활하는 곳에 관련된 풍수)의 본질적인 이치는 같아서 음택이 양택이며 양택이 곧 음택이다.

    따라서 음택풍수의 천리(天理·천지자연의 이치)를 알면 양택풍수의 의미를 알 수 있으므로 음·양택이 별개가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사무소의 좌측에 고려 중엽에 쓴 대략 1000년이 된 한산이씨 시조(始祖)인 호장공(戶長公) 이윤경의 묘소가 있다. 호장(戶長)이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향리직(鄕吏職)의 우두머리를 칭한다. 당시 풍수지리에 밝았던 한산군수가 관아청사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라 했다. 어느 날 호장공에게 계란 3개를 주면서 대청마루 밑에 묻어두면 병아리로 부화될 것이라 하자, 호장공은 속이 곪은 계란으로 바꾸어 묻었다. 이십여 일 후에 썩은 계란을 본 군수는 자신의 지식이 부족함을 탄식하다가 타 군으로 전근을 가게 됐다. 그 후 한산이씨 종중이 한산군의 관아를 지금의 한산면사무소의 터로 이전시켜 주고 그 자리에 호장공의 묘소를 조성했다. 묘소의 앞면 도로와 접한 곳에는 천연적으로 생긴 난봉(卵峯) 세 개가 마치 무덤처럼 나란히 있는데, 금계포란형의 알 3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한산면사무소의 좌측에 조성되어 있는 이윤경의 묘는 면사무소보다 20m정도 높은 곳에 조성돼 있는데,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동남향이며 묘소 위의 토지지신 석물은 동북향이었다. 산등성이에 해당하는 용맥(龍脈)은 후부하면서도 위엄을 갖추었으며 좌우요동을 하면서 생기가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묘소의 앞과 좌·우측은 인작(人作·사람의 손으로 조성함)을 한 부분이 있지만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라고 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또한 묘소 뒤는 마치 활짝 편 새의 두 날개 같은 형상의 흙 둔덕으로 된 ‘활개’를 조성해 비바람을 막아주는 병풍 역할과 작은 주산(主山)인 현무정(玄武頂)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병풍과 같은 형상으로 흉풍과 살기를 막아주는 현무정은 양택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전북 김제시 장화동에 위치한 정구례 가옥은 구례군수를 지냈던 정준섭이 살았던 전통가옥으로 구례군수의 ‘구례’와 정준섭의 ‘정’을 따서 정구례 가옥으로 불리고 있다.

    병풍 형상의 현무정과 돼지명당으로 알려진 이곳은 현재 외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후손인 정종수씨가 살고 있었다. 전북 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된 장화리(長華里) 쌀뒤주는 조선 고종(1863~1907) 때 만든 것으로 옛날 정씨 집안은 만석꾼으로 불릴 정도로 큰 부호였는데, 70가마가 들어가는 쌀뒤주의 쌀이 한 달 식량이 채 못 될 정도로 많은 손님이 머물렀다고 한다. 후손인 정종수씨의 말에 의하면 마당 중앙에 큰 돌이 박혀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없어졌다고 했다. 박힌 돌은 지기(地氣), 즉 터의 정기를 모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문과 일직선으로 마주보는 사랑채는 항시 흉풍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대문의 위치를 옆으로 옮기기를 조언했다.

    집 바로 뒤쪽 언덕에는 노거수(수령이 오래 된 나무)가 있는, 산등성이의 끝나는 곳에 위치한 생기가 있고 기품이 있는 가옥이었다.

    최근에 창원의 바닷가 근처에 있는 주택을 감정한 적이 있었다. 넓은 강가나 바닷가 주변의 아파트나 단독주택의 거주자는 감정적 기복의 변화가 심해질 수 있으므로 상시 거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이곳은 산등성이가 끝나는 지점에 있어서 터의 기운이 좋았으며 앞면은 우측 산의 끝부분을 보고 있어서 흉풍에 노출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집의 좌측면이 바다를 향해 있고 바다가 호수와 같이 적은 면적만 보였으며 좌측과 우측 산이 집을 감싸고 있어서 생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단, 뒷산에는 해풍을 맞은 돌이 많이 있어서 돌들은 한 곳으로 옮기고 대나무를 심어 땅의 기운을 강화하도록 했으며 정자(亭子)의 위치도 옮기도록 했다.

    특히 바다에 직접 노출된 방향에는 쥐똥나무나 사철나무 등을 빽빽하게 심도록 했는데, 바닷가 근처의 집이지만 보기 드물게 생기가 뭉쳐진 길한 집이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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