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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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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가을 초입 ‘사색의 길’ 찾아서…

한 걸음 풀벌레와 사연 나누고, 한 걸음 들꽃들과 눈길 나누며 ‘나’를 만나는 길
진해 드림로드 둘레길 중 ‘백일아침고요산길’
대발령 제1쉼터~북부동 백일마을 5.6㎞ 구간

  • 기사입력 : 2016-09-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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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한 가닥 잡지 못하여

    허물어져 가는 시간이

    가슴속에 머무는 날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산으로 가자



    세월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미로처럼 숲의 길섶에서

    가슴속 감정 주체할 수 없어

    화산처럼 폭발하거든

    오염된 마음 씻어주는

    산으로 가자



    마음이 고달프면

    산으로 가자



    저 웅장한 산의 정상에서

    뼈져린 고통을 둥지에 남기는

    오목눈이와 뻐꾸기를 닮은

    사람들을 내려다보자



    -노태웅의 시 `마음이 고달프면 산으로 가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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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봉 해오름길’ 종점(왼쪽)과 ‘백일아침고요산길’ 출발점.

    이른 아침 사람들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은 산길을 걸어 봅니다. 그 길이 낯설기도 하지만 생명이 살아 숨쉬는 숲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전하는 듯합니다.

    어느샌가 찾아온 가을의 문턱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 길을 걸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가을단풍을 즐기기엔 아직 이른 계절이라 산은 온통 초록 물결입니다.

    한적한 오솔길을 걸으며 ‘이만한 가을맞이가 또 어디 있을까?’라는 행복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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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드림로드 둘레길 중 하나인 ‘백일아침고요산길’.

    창원의 둘레길 중 하나인 진해 드림로드는 ‘장복하늘마루길’, ‘천자봉 해오름길’, ‘백일아침고요산길’, ‘소사생태길’ 등으로 총 21㎞ 구간에 이릅니다. ‘장복하늘마루길’은 장복산공원 위 삼밀사 옆을 지나 하늘마루입구, 편백숲 쉼터, 안민도로(안민휴게소)로 이어져 있습니다. 진해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지요. ‘천자봉해오름길’은 여기서 편백숲 쉼터를 지나 해병훈련테마쉼터, 드림파크 갈림길, 천자암 만남의 광장 위 갈림길로 연결됩니다. 이 길은 진해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지요. 봄이면 하얀 벚꽃이 장관을 이뤄 마치 구름 위를 사뿐히 걷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아늑하고 고요한 아침의 풍경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백일아침고요산길’을 걸었습니다. 진해구 웅천동 대발령 제1쉼터 만남의광장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북부동 백일마을 앞까지 5.6㎞ 구간으로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하얀 구름다리를 건너 산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서 만난 노란 들꽃은 마중나온 새색시인 양 수줍게 인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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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아침고요산길’에서 바라본 ‘시루봉’.


    푸르고 울창한 숲, 이끼 낀 산길은 살아 숨쉬는 숲의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지난여름 무서운 폭염에 대지는 목말라했습니다. 다행히 얼마 전 내린 많은 비는 숲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숲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하지만 새 생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 풀벌레 소리, 산새소리…, 숲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여기에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은 숲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굽어진 언덕을 따라 숨을 헐떡이며 오르기를 20여 분, 마침내 ‘천자봉해오름길’의 종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언덕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백일아침고요산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요.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있으니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언덕을 따라 ‘헉!헉!’거리며 오릅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 근육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하체는 누가 봐도 건강한 사내들입니다. ‘저들은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저렇게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데, 나는 맨몸으로도 이 언덕을 제대로 오르지 못해 이렇게 숨을 헐떡이고 있나…!’ 순간 나 자신의 부실함(?)에 애써 동호인들을 외면합니다.

    이제부터 산길은 숲을 따라 옆으로 이어집니다. 사각사각 자갈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니 자연스레 두 발의 감각도 예민해진 듯합니다. ‘찌르르~ 찌르르~ 사각! 사각!, ‘찌르르~ 찌르르~ 사각! 사각!’ 걸음 소리와 풀벌레 소리의 만남은 한 편의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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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아침고요산길’에서 만난 산악자전거 동호인들.


    길을 걷다 만난 노란 나비 한 쌍은 공중에서 춤사위를 벌이다 풀밭에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한참 동안 멍하니 서서 바라봅니다. 가는 길에 다양한 종류의 들꽃과도 인사를 나눠봅니다.

    혹시 ‘칡꽃’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숲에서 나는 옅은 아카시향 같은 향기에 ‘무슨 냄새지?, 아카시아꽃은 벌써 졌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찾은 ‘칡꽃’, 짙은 보라색을 머금은 꽃잎은 화려하진 않아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언덕을 돌아서니 저 멀리에 시루봉 정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가깝게만 여겼던 산 정상이 여기서는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산들로 겹겹이 쌓인 산 아래는 푸르름을 머금은 벼들과 평화로운 백일마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내림길에 만난 수백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는 위용을 드러내며 우리를 맞이합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금세라도 비를 내릴 것처럼 험상궂게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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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게 서두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목적지 ‘백일아침고요산길’ 종점입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는 한상경 선생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서둘러 인생길을 가다 보면 아무것도 진정으로 보지 못하고, 천천히 가는 자는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성급해 급히 말하는 자는 아무것도 바꾸어 놓지 못하지만 참고 천천히 던진 몇 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깊은 뜻을 품고 있지요. 숲은 오늘도 내게 속삭입니다.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뒤돌아보기도 하라고…, 무작정 앞으로만 나아가지 말고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라고….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마음에 귀기울이기 위해 조용한 산길을 찾은 당신에게 소개시키고 싶은 길벗들이 있습니다. 자연스러움 그대로를 간직한 순수한 모습으로 우리를 지그시 미소 짓게 만드는 들꽃들입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와 왜 늘 거기 있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 하는 깨달음, 계절의 변화까지 알려주는 고마운 친구들이죠.


    ☞ 백일아침고요산길에서 만난 들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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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래가막사리꽃

    백일마을길 초입부터 무더기로 피어 있는 노란꽃의 이름은 나래가막사리입니다.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8~10월에 피고 작은 것은 20㎝, 큰 것은 150㎝까지 자란답니다. 꽃잎이 아래로 젖혀지는 것이 특이합니다. 작은 잎이 3~5갈래로 갈라지는 그냥 가막사리와는 잎과 꽃 모두 모양이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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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의장풀

    새의 이름을 지을 때 소리나 생김새의 특징, 특성을 본따 짓기도 하는데 들꽃도 그렇습니다. 닭장 옆에서도 잘 자란다고 해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달개비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길가, 냇가 옆 습지 등에서 자라는데 6~9월 사이 볼 수 있고 봄에 나는 어린 잎은 약재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잎이 더 좁고 꽃잎 색이 다른 것은 좀닭의장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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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꼬리망초

    흔히 아주 작거나 적은 것을 낮잡아 말할 때 ‘쥐꼬리만 하다’고 하는데, 키도 작고 꽃잎의 크기가 새끼손톱만한 이 꽃의 이름은 쥐꼬리망초입니다. 줄기 끝에 이삭처럼 달려 있는 이 귀여운 꽃은 꽃잎이 피는 모습이 쥐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데, 예쁜 색과 앙증맞은 모양을 보면 이름이 야속해 보이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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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리

    마디풀과의 고마리는 물가에 사는 한해살이풀입니다. 8~10월에 볼 수 있는데 크기는 60~80㎝ 정도 된답니다. 물을 깨끗하게 해주니 고맙다는 듯을 담아 고마우리-고마우리하다가 고마리가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줄기에는 가시가 있는 게 특징인데, 여름철 들이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며느리 밑씻개와 헷갈리지만 줄기를 자세히 보면 다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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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민들레

    낯선 데서 아는 얼굴을 만나면 반갑듯이 이름 아는 꽃의 등장에 반갑습니다. 동네 길가, 도심 보도블록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민들레입니다. 하지만 토종민들레가 아니라 원산지가 유럽인 서양민들레입니다. 웬만큼 자세히 봐서는 토종, 서양 구분이 어렵지만 시기와 꽃잎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지요. 특히 꽃잎 뒤에 있는 모인꽃싸개잎을 보면 더욱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데 서양민들레는 모인꽃싸개잎이 젖혀져 꽃잎과 떨어져 있고 토종은 모인꽃싸개잎이 꽃잎을 받쳐준답니다. 서양민들레 같은 것을 귀화식물이라고 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여러 해 우리나라에 살면서 야생으로 퍼진 것을 말한답니다. 국화과의 민들레는 여러해살이 풀로 들에서 주로 핍니다. 토종민들레는 4~6월에 주로 볼 수 있고 서양민들레는 3~10월에 꽃이 피죠.



    이 밖에도 관심을 갖고 산길 여기저기를 살펴보면 엉겅퀴, 개망초, 맥문동 등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는 들꽃들을 제법 만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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