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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3-나의 이름은 청춘] 조향사 황혜진 씨

향수에 담은 나만의 향기로운 꿈

  • 기사입력 : 2017-07-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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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찍이 미국 사상가 겸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말했다.

    ‘행복이란 향수와 같아서 먼저 자신에게 뿌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퍼트릴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사회가 원하는 삶을 좇는다.

    그저 취업 준비생으로 통칭되는 세상의 청년들 역시 이른바 잘나가는 직장, 직업을 얻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됐다.

    황혜진(29·여)씨도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아할 구석이 하나도 없는 그 직업을 위해 10여년을 치열하게 달렸다. 덕분에 종종 ‘성공한 청년’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 지쳐갔다.

    그래서 그는 치열하게 얻었던 자리를 버렸다. 아니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나섰다. 그렇게 황씨는 조향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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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를 만난 스무살= “제가 학교 다닐 땐 학생이 향수를 뿌린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때 향수를 접했더라면 지금의 제 삶이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그가 향수를 가져본 건 대학 때였다.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 황씨를 위해 지금의 남편이 성년의 날 기념으로 준비한 선물이었다. 평소 유난히 향제품을 좋아하던 황씨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향에 관심을 가진 건 스무살 때였어요. 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중 한 기념품 가게에서 캔들을 처음 접했어요. 초에서 향이 나는 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좋아서 그때부터 캔들을 모으기 시작했죠. 지금처럼 캔들이 유행하기 전이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향을 맡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향에 대한 애정은 캔들, 향수와 같은 향제품을 수집하는 것에 그쳤다. 나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찾고 싶어서 브랜드가 다양한 타 지역으로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향수를 직접 만든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막연한 분야였다.

    “조향이라고 하면 무조건 화학과나 조향학과, 화장품과학과 등 대학에서 전공을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향수를 만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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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황혜진씨가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서 자신이 작성한 향수 포뮬라(공식)를 따라 여러 향료를 배합한 후 잘 섞이도록 흔들고 있다./성승건 기자/



    ●치열했던 하지만 부질없던= 황씨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간호사는 취업이 잘되고 보수도 괜찮은 직업이었다. 그렇게 대구과학대 간호과에 들어갔다.

    “모든 직업이 그럴테지만 간호사가 되는 길은 치열했어요. 전공 공부는 물론이고 국가고시 준비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고등학생처럼 공부를 했어요. 고3 수험생만큼 바쁜 나날들이었죠.”

    그렇게 그는 국가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은 간호사가 됐다. 대학을 졸업한 그해 창원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 입사도 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는 속전속결이었다.

    하지만 삶은 더 치열해졌다. 간호사가 된 지 5년이 되던 작년 4월 자신이 세운 목표대로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렇게 치열하게 이룬 지금의 위치는 전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만두는 게 쉽지는 않았다는 황씨에게 “그간 공부한 게 아깝지 않았냐”고 질문했다.

    그는 “당연히 아까웠다. 매월 일정하게 들어오는 월급의 유혹도 컸다”면서도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것저것 계산할 마음이 신기하게도 사라졌다”고 했다.

    “지난해 4월 모든 걸 놓고 40일 정도 유럽여행을 떠났어요. 처음으로 제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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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향이 담긴 캔들= 여행을 통해 찾은 답은 평소 유난히 좋아했던 ‘향기’였다. 7~8년 전부터 취미로 만들던 캔들을 올 초 한국아로마테라피강사협회에서 자격증을 따고 전문적으로 배웠다.

    “집을 캔들공방으로 만들었어요. 근데 점차 내가 만든 캔들에 시중에 있는 향이 아닌 나만의 향을 입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직접 만든 향은 만든 이의 이야기를 담기 때문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 땐 분홍빛 이미지의 향을 떠올리듯이 상대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을 향으로 옮기는 거니까 향수는 즉 제 마음이에요.”

    황씨는 국내는 조향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호소한다.

    “흔히들 프랑스에서는 17세기 가죽냄새를 없애려 향수를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역사가 깊어서인지 조향학교도 있고 교육도 체계적인 반면 우리나라는 전문적으로 배울 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이 없는 탓이겠죠?”

    찾아보니 조향분야는 다 민간자격증뿐이었다. 여러 단체 중 황씨가 택한 건 사단법인 대한향장문화예술진흥협회. 협회가 시험 권한을 부여한 부산의 한 조향업체를 알게 돼 공부를 시작한 지 약 두 달 만에 3급(퍼퓸 디자이너)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초 캔들공방으로 시작했던 집은 이제 향기공방이 됐다. 이름은 꿈의 정원이라는 뜻의 ‘자르뎅 드 레브(Jardin De Reve)’라고 지었다. 조금은 돌아온 자신의 꿈을 응원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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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나 즐길 수 있는 향기로운 공간=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어떠한 향을 만들고자 하는지 충분한 대화를 나눈 후 좋아하는 향취를 골라낸다. 그리고 어떤 향을 어떤 비율로 넣을 것인지 직접 공식을 작성해 1차 샘플을 제작한 후 좀 더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단계를 거쳐 최종 샘플을 제작한다.

    “향료 비율은 이론상으론 탑노트(뿌린 후부터 한 시간 정도 나는 첫향)부터 20%, 미들노트 40%, 베이스노트 40% 비율처럼 피라미드형이 되는 모양이긴 하나 요즘엔 개인의 취향을 중시해 비율을 의식하지 않는 추세예요.”

    5월 말부터 시작한 원데이 클래스는 두 달 만에 20여명이 거쳐갔고, 심화과정은 현재 2명이 예약했다.

    “제 이름을 내건 향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요. 아무나 오다가다 문을 열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요. 물론 지금 홈클래스도 소중하지만 다소 폐쇄적인 공간이니까요. 제가 향기로 힐링을 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힐링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 그게 조금은 돌아온 제 진짜 꿈이에요.”

    김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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