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눈으로 내 자전거를 훔쳐갔다
도둑은 도둑을 알아보는 법이다
나는 첫눈에 그가 자전거 도둑인 걸 알아봤다
나는 그동안 많은 자전거를 훔쳤다
내가 훔친 자전거들은
내 눈의 창고에 쌓여있다
그가 내 자전거를 훔쳐갔지만
내가 훔친 자전거의 주인들이 나에게 그랬듯이
나는 그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
내 눈의 창고에 있는 자전거는
모두 훔친 자전거들이지만
자전거의 주인들은 한 번도
자전거를 도둑맞은 적이 없다
☞ 건강을 위해, 취미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4대강 사업 이후에 자전거 길이 새로 생겨 전국의 많은 동호인이 그 길을 경쟁하듯 완주까지 한다고 들었어요. 그러나 시인은 자전거 타는 일을 즐겨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동호회 같은데 소속되어 있진 않을 거예요. 혼자서도 얼마든지, 어디든지, 은빛의 두 바퀴면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까요.
이런 그가 자전거를 훔치다니! 게다가 ‘도둑은 도둑을 알아보는 법이’라며 도둑을 옹호하다니, 심지어 시인의 창고에 자전거가 쌓여 있다고까지 고백해요. 평소에 자전거를 자식처럼 아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도둑의 심정이나 그 상황까지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만큼 가지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이니깐요. 하지만 시인은 자전거 도둑을 매번 용서하고 말아요. 왜냐구요? 그동안 시인이 훔친 수많은 자전거 주인들은 단 한 대도, 결코 도둑을 맞은 적이 없으니까요. 참으로 유쾌하면서도 역설적인 시이지요. 팔월이 시작되는 첫 주에, 그대도 나도 눈의 창고에다 무엇을 쌓아놓고 누구를 용서할진 모르나 이렇게 또 웃고 시작하자고요. 정이경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