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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게기’라는 행정용어를 아십니까?- 허충호(함안의령본부장·국장)

  • 기사입력 : 2018-0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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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군이 일제 잔재 행정용어 14건을 우리말로 대체하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개편 대상 용어들은 ‘부락’ ‘구배’ ‘납골당’ ‘견습’ ‘구좌’ 같은 것들이다.

    이번에 개편하는 내용 중에는 이런 용어도 있었던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들도 여럿 포함돼 있다. 이를테면 ‘게기(揭記)’ ‘지참(持參)’ ‘지득(知得)’ 같은 것들이다. 게기는 ‘무엇을 기록해 높이 붙인다’는 뜻이다. 이번 용어정비작업을 통해 게기는 ‘규정하다’로 바뀐다. 지참은 지각을 뜻한다. 지득은 ‘알게 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신세대에게는 ‘그들만의 암호’가 될 개연성이 높은 단어들이다.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그 뜻을 쉬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행정용어 중에, 그것도 군민들이 자주 접해야 하는 자치조례 등에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일제가 한반도에서 쫓겨난 지 70여 년 만에 퇴장시킨다는 얘기다.

    함안군이 이런 일본식 한자어를 일제 정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는 매우 뜻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수많은 한글날을 보내며 일제의 잔제를 걷어내자고 했던 여러 과정을 상기하면 참 늦은 감도 든다.

    군은 이번 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관습적으로 고착된 일본식 한자어를 대대적으로 정비함으로써 행정 용어의 표준어 사용을 확대하고’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 ‘관습적으로’라는 문구에 주목한다.

    한글날마다 많은 분야에서, 특히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분야에서 일제식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들이 진행된 만큼 상당한 개선이 이뤄졌으리라 짐작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는 방증인 것 같아 의아하기만 하다.

    이런 사례가 어디 함안군만의 일일까 싶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흔히들 관습은 긍정적인 문화의 계승으로, 폐습은 부정적 의미의 습성으로 이해한다. 폐습은 폐단으로 이어지고 폐단은 관행으로 고착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행정기관의 여러 부문에서 이런 일제식 용어의 파편들이 남아있는 것은 행정도 도제식 업무관행에 매몰됐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선배가 사용한 용어가 후배 공무원에게 고스란히 전수되는 도제식 업무관행이 이런 ‘관습 고착’의 한 이유는 아닐까.

    관습고착의 주요 원인은 ‘타성 (惰性)’이다. 타성은 말이나 행동에 굳어진 습성이다. 많은 행정 업무과정에서 이 같은 관행과 타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묵은 타성보다 자성과 개선의 안목에서 행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허충호 (함안의령본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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