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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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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해고 하루 앞둔 한국지엠 비정규직 585명

“쉼없이 기계처럼 일만 했는데 앞날 막막… 새해에도 투쟁 계속”
GM 창원공장·도급업체 계약 만료
내일 해고반대 촛불문화제 열어

  • 기사입력 : 2019-12-29 20: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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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마지막 날인 31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585명은 한국지엠 창원공장과 도급업체와의 계약만료로 한꺼번에 해고된다. 차량 뼈대가 내려오면 내장되는 전기선과 계기판을 깔고, 문과 타이어를 부착하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정 속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빛나는 완성차와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엉킨 컨베이어벨트처럼 삶이 속수무책으로 망가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은 연말연시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보낸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김희근 씨가 해고를 앞둔 심경을 밝히고 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김희근 씨가 해고를 앞둔 심경을 밝히고 있다.

    ◇힘든 공정 도맡아 온 비정규직= “앞문과 뒷문 단차가 나버리면 안으로 들어가 위로 문을 제껴 맞춰야 해서 힘이 엄청 들어가요. 우선 손목이 다 나가고, 다음에 허리가 가죠, 이 공정하신 분들 중에 몸이 온전하신 분이 없을 겁니다.”

    2001년 입사해 내년이면 20년차를 맞는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진영준(47) 씨는 그간의 어려움을 두고 “비정규직은 우리뿐 아니라 다 힘들잖아요”라는 말로 갈음했다. 시간당 실제작업시간을 일컫는 ‘편성률’이 높고, 회사가 편성률을 지속적으로 높이려하면서 노동강도도 셌다고 말한다.

    “점심시간 40분인데 그걸 먹으러 가기가 힘들 정도로 고되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은 적도 있습니다. 남은 시간에 일하기도 했죠. 더 적은 임금 받으면서도 열심히 오래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20년 가까이를 버텼는데, 이제 나가라고 하네요. 막내아들이 중1이라 더 일해야 하는데….”

    ◇‘계약’ 목줄 쥐었던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조에 소속된 김희근(39)씨는 2008년 2월부터 지금까지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12년간 일하면서 10번 해고 통보를 받았다. 처음 단기계약직 5년 반 동안 7번 해고당했다. 이들에게는 해고가 처음이 아닌 사람이 많다. 무기계약을 시키지 않으려 단기계약을 맺고 끊었다 다시 부르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말을 잘 듣고, 회사에 밉보이지 않아야 재계약이 수월하기에 회사연락을 기다렸고, 그는 늘 고용불안 상태였다. 당시는 도급업체들이 있어 다시 일할 수 있으리라 기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지엠 창원공장이 도급업체 전체와 계약을 종료하고 해고시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거의 매년 해고당했죠. 무기계약직이 되고서도 3번째 해고통보입니다. 정말 기계와 같이, 제가 부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했는데 회사는 말을 뒤집고, 배신감도 느끼고, 정말 억울하고 화납니다. 못 돌아온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하기도 하고요.”

    특히 그는 2015~2016년 비정규직 노조의 조합원들 수가 늘어나자 이들이 다수 소속된 업체를 정리하려는 시도들이 시작됐다고 밝혔으며, 이번 해고도 그 연장선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겉모양만 같고 품질이 다른 비정규직들의 회사 점퍼가 그들이 이제껏 처했던 상황을 보여줬다.

    ◇새해에도 포기않는 노동자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예정대로 1교대 전환을 실시했으며, 일부 공정에 대해 새로운 비정규직을 모집하고 있는 상태다. 해고와 관련된 답변은 내놓지 않고, 이들이 투쟁을 진행하는 천막을 철거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측의 횡포에 그냥 물러서지 않을 방침이다. 이들은 30일 오후 2시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한국지엠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어 한국지엠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반대하는 2차 경남노동자대회를 열며, 해고예정일인 31일에는 해고반대 촛불문화제를 1박 2일 일정으로 개최해 2020년 새해 아침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금속노조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 배성도 지회장은 “우리의 너무나 절실한 이 상황이 각오를 다지는 기반이 될 것 같다. 법을 안 지키는 자본에 맞서 싸워 당당히 무기한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며 “전국의 투쟁 사업장이 국가가 정한 법을 지키지 않는 데서 비롯된 사업장들이며, 대부분 대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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