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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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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병풍산이 좋은 이유

  • 기사입력 : 2020-05-08 07: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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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고성군 학동 마을 옛 담장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학동 마을만의 독특한 담장 형태를 이루고 있다. 수태산(570m) 일대에서 채취한 자연석인 점판암개석(蓋石)과 흙으로 쌓았으며, 담장 상부도 점판암개석을 올려 최종 마감을 함으로써 웅장함을 느끼게 했다. 담장 높이는 1.5m에서 2.3m 정도까지 다양하지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 대체로 1.8m 이상 쌓았다. 마을길에 늘어선 담장의 곳곳에는 성인 키 높이 정도에 구멍을 내어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거리를 내주었는데, 이 구멍을 ‘구휼 구멍’이라 불렀다.

    이 마을은 1680년 무렵 최형태가 후손과 함께 개척했다. 지형이 마치 학이 알을 품은 형상(학포지란형·鶴抱之卵形)이어서 자손 대대로 번성할 명당이라 생각하여 마을 이름을 학동(鶴洞)이라 했다고 한다. 수태산 줄기 아래에 형성된 마을은 학림천을 사이에 두고 마을 앞의 학동로에서 바라볼 때, 우측은 주택보다 농토가 많으며 좌측은 고택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수긍할 수 있는 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학림천의 좌측에 위치한 집들은 넓은 용맥(龍脈·뒷산 줄기)의 끝자락 아래에 있으며, 뒷산이 병풍 역할을 함으로써 흉풍(凶風·계곡풍)을 막아주고 있다. 게다가 좌청룡(좌측 산)과 우백호(우측 산), 안산(앞산·청룡이 안산 역할을 함)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마을 외부로부터의 살기(殺氣)를 차단시켜 안온한 곳이 되었다. 반면 우측은 계곡이 많아 계곡풍이 세차게 불고 많은 물길로 인해 습한 땅이 되어 거주보다 농작물을 심기에 더 좋은 땅이다. 용도에 맞게 땅을 잘 활용하면 쓸모없는 땅은 없다.

    학동마을의 최필간 고택은 순조 9년(1809)에 세운 주택으로 남부지방 건축 양식이 잘 나타나는 양반가의 저택이다.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가 축선 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안채를 중심으로 정면에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내외벽(시선차단벽)을 설치해 안채의 내밀한 공간을 보호하도록 했다. 집 뒤에는 땅심을 북돋우고 살기를 막기 위해 대나무를 빽빽이 심어놓았다. 하지만 주택의 대문은 기(氣)가 드나드는 중심 통로로 대단히 중요한 곳인데, 최필간 고택은 솟을대문을 열면 곧장 사랑채가 마주하고 있어 흉풍과 살기를 맞는 구조이므로 거주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평소 대문을 활짝 열어두면 안되며(실제 자주 열어두고 있음) 큰 대문을 사용하기보다 쪽문을 설치해 드나드는 것이 좋다. 특히 대문 밖은 앞집이나 옆집의 돌담을 바로 대하기 때문에 열어둔 대문을 통해 냉한 기운을 항시 맞는다.

    학동마을의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은 마을 뒷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점이 있지만, 돌이 너무 많으면 찬 기운과 뾰족한 모서리에서 발산되는 나쁜 기운이 주민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이를 보완할 대책이 필요하다. 즉 마을 곳곳에 나무를 심고 돌담에는 고운 흙을 두툼하게 바르며, 철재대문은 목재대문으로 바꿔 비보(裨補·도와서 부족한 점을 채움)를 하는 것이 좋다. 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정확히 알면 양택(陽宅·주택)이나 음택(陰宅·무덤)을 조성할 때 큰 도움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해가 됨을 알아야 한다.

    지인 중에 이미 흙으로 돌아간 증조부모와 고조부모의 내려앉은 봉분도 신경 쓰이고, 자식들 벌초 고생도 줄이고자 봉분을 없애고 흙을 담아 소유하고 있는 산에 평장으로 모시거나 공원묘원의 납골묘(봉안묘)에 안치하기 위해 감정을 부탁했다. 해당 산의 터는 산줄기가 좌우로 요동치면서 힘차게 내려오다가 자리를 잡기 위해 멈춘 곳으로 지기(地氣)가 대단히 좋은 곳이었다. 지의류가 바위에 붙어 있는 청정한 곳이며, 당판(묏자리와 그 주변)이 기우는 것을 방지하고 계곡풍을 막아주는 선익(蟬翼)의 역할을 봉분 옆에 ‘박혀 있는 돌’이 하고 있었다. 선익이 있어야 비로소 좋은 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선익의 유무는 대단히 중요하다. 공원묘원의 터는 산의 끝에 있으면서 지기도 있고, 주변의 산세도 적절히 갖춘 곳이었다. 이런 경우는 납골묘에 흙만 안치하므로 문제될 것은 없지만, 만일 뼛가루를 안치한다면 산 사람이 편하기 위해 죽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납골묘는 화장한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땅위 석실 안에 보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석실은 ‘나쁜 돌’의 역할을 한다. 산에 설치한 납골묘들이 점차 사라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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