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촉석루] 메멘토 모리- 이영인(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 기사입력 : 2021-02-01 19:56:43
  •   

  • 초등학교 5학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기억의 할아버지는 당뇨와 뇌졸중으로 발음이 어그러지시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13명의 손주 중 한 명인 나에게 한마디라도 더 해주시고 싶어 애쓰시던 멀지만 따스한 분이셨다.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경주 큰댁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2박3일 동안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가 하루종일 귀에 맴돌고, 어렸던 나는 사촌언니오빠들과 하루종일 접시를 닦고 치우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건지 아닌건지도 느끼지 못하면서 나의 첫 죽음을 맞이했다. 그 후 나에게 늘 죽음은 저 멀리 있었다. 의사면허를 따기 전까지.

    병원은 생과 사로 가득한 곳이었다. 새 생명을 얻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에 또 다른 환자들은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나는 쳇바퀴 돌 듯이 내 인생을 연명하고 있었다. 내 직함은 인턴. 인턴 생활 중 호스피스 병동을 돌 때였다. 1인실을 쓰는 환자분이 있었는데, 환자분은 뇌로 암이 전이가 되면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그 곁을 남편분이 항상 지키시면서 갈 때마다 성경책을 큰소리로 환자분에게 읽어주시면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응답해주지 않는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으세요?” 그러니 환자보호자가 빙그레 웃으며 “그래도 이거 말고 할 게 없지 않나요?” 하시는 거였다.

    호스피스 병동인턴의 주역할은 돌아가신 환자분의 관 제거다. 말기암 환자들의 몸에는 관이 많이 박혀 있다. 소변줄, 중심정맥관, 항암치료를 위해 달았던 관 등등. 정성스럽게 많은 관을 제거하면서 생각했다.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쉬세요. 그리고 말기암의 아내에게 성경책 읽어주며 기도해주던 환자 보호자분이 생각이 났다. 마지막까지 마음의 평화를 얻길 바라며 천국에 갈거니 당신도 나도 괜찮다, 괜찮다 하고 계셨나 보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 호스피스 의원을 운영한다. 그리고 저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죽음과 늘 가까이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처럼. 환자들과 헤어질 때도 그런거라 생각한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이영인(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