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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지지지지(知止止止)- 이종훈(광역자치부장)

  • 기사입력 : 2021-02-08 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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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문인이자 명문장가인 이규보는 자신의 당호(堂號)를 지지헌(止止軒)’으로 지었다. 그는 세상에 나아가서도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물러나서도 구차하게 숨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지(止止)라는 것은 멈춰야 할 곳을 알아 멈추는 것을 말한다. 멈춰야 할 곳이 아닌데도 멈추게 되면 그 멈춤은 멈출 곳에 멈춘 것이 아니다’라고 풀이했다. 그의 ‘멈춤’은 세상을 피하지 않고 더불어 뜻을 펴는 것이다.

    ▼하지만 욕심 많은 인간이 ‘멈춤’을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심리를 잘 활용한 것이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다. 그는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귀신같은 책략으로 천문을 연구하고 기묘한 계산으로 지리를 통달하였도다. 싸워서 이긴 공이 이미 높았으니 만족함을 알아서 그치기 바라노라’라는 시를 보낸다. 이는 ‘도덕경’을 읽었다는 전제 아래 꺼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우중문은 심리전에 휘말려 청천강(살수)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노자의 도덕경 제44장에는 ‘만족할 줄 알면 치욕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가이장구(可以長久))’라며 그침의 미학을 강조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멈춰야 할 때를 모르고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홍남기 부총리의 ‘지지지지(知止止止)’란 표현도 그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서 그친다’라는 의미인데 재난지원금 보편적 지급에 반대하면서 나라의 곳간을 지키는 그의 깊은 고민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재난지원금을 준다는데 마다할 국민이 있겠냐만 결국 바닥난 곳간을 채우는 것은 국민들이다. 피땀 흘려 모은 ‘나라 곳간’을 그들이 자신의 것인냥 절묘한 시점에 거침 없이 퍼주는 것이 얄밉지 않은가. ‘곳간지기’의 ‘지지지지’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종훈(광역자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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