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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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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YOLO와 사과나무- 이영인(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 기사입력 : 2021-02-08 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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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해 전 꽃보다 청춘이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청춘 3명이 나미비아 사막을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사막 한가운데 혼자서 큰 SUV를 몰고 나타난 백인 여성이 배우 류준열의 손바닥에 YOLO(욜로)를 적어주며 ‘You Only, Live Once(당신의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이야기했다.

    인생 한 번뿐. 그래서 난 지금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 중이야. 얼마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는지 그해 우리나라에 YOLO 열풍이 불었다. 사표를 내고 세계 일주를 하러 떠나고 비싼 스포츠카를 구입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환자들이 병동에 입원하면 상담을 진행하는데, 환자들도 환자보호자들도 늘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젊었을 때부터 한번 쉬어보지도 못하고 고생해서 이만큼 살게 되어 이제 여행도 가고 즐겁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런 몹쓸 병(말기암)에 걸려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 생을 마감하게 됐다.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말고 여행도 다니고 인생을 즐기고 살았어야 했는데. 아이고, 내 팔자야.”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도 이제 YOLO 해야 되나, 인생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또 어느 날은 환자와 상담을 하는데 “나는 이제 얼른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나는 0월 00일에 딱 죽고 싶은데 어떻게 좀 안 되겠냐”며 입원한 날부터 내 눈만 마주치면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달고 사신다. 그리고 날 좀 죽여달란 이야기까지. 그런 날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남은 시간 남은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본인을 위해서도 더 소중하게 써주시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일테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상실수업’에는 병실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혼자서 무아지경이 되도록 춤을 추는 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이게 내 마지막 댄스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순간순간을 즐기며 시간을 소중히 하기. 어쩌면 YOLO와 사과나무는 이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영인(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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