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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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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3월이 오면- 김정부(전 국회의원)

  • 기사입력 : 2021-03-02 20: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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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쪽 바다 멀리에서 마산만으로 봄소식이 실려온다. 3월이 올 때마다 독재와 불의에 온몸으로 항거한 마산의 얼과 정신이 새로워진다.

    3·1 독립운동과 3·15의거가 우연히 발생한 것은 아니다. 마산(창원)지역의 저항운동은 임진왜란과 조선후기 농민봉기부터 시작됐다. 첫째, 창원(마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관민이 단결하여 성을 지키고 어느 누구도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하여 전란 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1601년(선조 34년) 대도호부로 승격했다. 둘째, 조선후기에도 1801년 전지효가 중심이 된 사회불만의 괘서 사건, 1862년과 1893년 계사년에도 같은 성격의 민란이 진주민란의 영향으로 창원에도 확산됐다. 1919년 4월 3일 삼진 주민 7000여명이 일제에 맨몸으로 항거한 4·3의거야말로 대표적인 민족 저항운동이라고 하겠다.

    최근 4·3만세운동 때 희생자를 기리는 8의사 묘역과 3·15의거 기념탑을 둘러보면서 비문에 새겨진 글을 잠깐 옮겨본다. “1919년 3월 1일 중앙에서 울려퍼진 독립만세의 우렁찬 함성 여기 김수동, 변상복, 김호현, 김영환, 변갑섭, 이기봉, 고묘주, 홍두익 여덟분이 잠들어 계시다. 기미년 4월 3일 만세외거 때 수천명 시위 군중에 앞장서서 일본헌병에 맨주먹으로 맞서 싸우다가 그들의 총탄에 의롭게 숨지니 지금의 진북교역 창의탑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다.(중략) 뉘라서 자기의 목숨이 아깝지 않는이 있으랴. 우리는 나라가 있고 내가 있다는 엄연한 진리를 이 여덟분의 흘리신 피에서 배워야 한다.”(8의사 묘비문)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 15일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에 빗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노라.”(3·15의거기념탑 비문)

    필자가 국회의원 재직시 어렵사리 마련한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마산 애국지사 사당을 건립해 마산의 혼과 정신을 후대에 이어가고 있다. 3월 1일은 조국 광복을 위해 만세를 외쳤던 삼일절 102주년이 되는 자랑스러운 날이다. 5000년의 역사에서 수많은 외침과 국란이 있을때마다 조국과 민족을 지켜낸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이다. 특히 마산은 3·1 독립운동과 3·15의거를 통해 나라를 지켜온 성지이다. 그러나 최근 마산은 통합으로 그 명칭이 없어지고 시민정신도 크게 침체되어 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자랑스런 마산시민정신을 함양하고 시민의 긍지를 굳건히 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3·1절 102주년을 맞아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만만세세 우뚝 선 마산애국지사의 정신을 기려보자.

    김정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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