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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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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발상의 전환- 손봉출(창녕 영산초등학교 교감)

  • 기사입력 : 2021-03-07 2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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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로 발령을 받고 두 번째로 근무한 학교는 전교생이 50명 안팎의 작은 학교였다. 당시엔 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학예대회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는 대표로 나갈 5~6학년 학생이 모자라서 4학년 학생까지 참여하게 됐다. 만들기나 그리기 등은 고학년이 맡았지만 산문이라 일컫는 글짓기는 4학년에게 배정됐다.

    가르칠 교사가 모자라서 한 교사당 여러 분야를 맡아 지도를 해야 했는데 글짓기까지 내 담당이 됐다. 평소 글쓰기를 싫어했던 나는 솔직히 잘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6학년도 아닌 4학년이었으니 더 그랬다. 가르친 것이라곤 원고지 쓰는 방법을 지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글의 내용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많이 들어가도록 쓰면 좋겠다는 최소한의 지도를 마치고 대회에 출전시켰다.

    며칠 후 발표된 결과를 보고선 까무러치게 놀랐다. 떠밀리다시피 참여한 우리 학교 4학년 학생이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 아닌가. 원고지 쓰는 요령이나 잘 지켰는지 염려스러웠는데 1등이라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돌려받은 원고의 첫 장에는 떡하니 최우수상이란 표기가 되어 있었다. 궁금해서 원고를 살피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최우수상을 받은 이유를 알만했다. 학생이 쓴 제목은 ‘생활을 절약하자’였다. 글의 주제가 ‘절약 생활’이었다고 하니 다른 학생들이 어떤 글을 썼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4학년인지라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은 틀린 곳이 좀 보였지만 물질이 아닌 시간을 절약하자는 내용만큼은 무척 참신했다. 제목의 순서를 바꾸는 발상의 전환으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것이었다.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되레 학생들로부터 배움을 얻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나도 발상의 전환을 해보려 주위를 눈여겨보곤 한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을 바꾸면 달리 보이는 게 여전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턴이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통해 중력을 발견한 것이나 가수 헨리가 ‘하나도 모르겠다’라는 말을 ‘1도 모르겠다’라고 재치있게 표현한 것도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글쓰기보다는 운동을 더 잘했던 그 어린이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진다.

    손봉출(창녕 영산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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