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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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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일기 검사- 손봉출(창녕 영산초등학교 교감)

  • 기사입력 : 2021-03-21 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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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는 권장하는데 학생은 싫어하는 대표적인 일이 일기 쓰기이다. 매일같이 일기를 쓰는 일이 만만치 않아 학생들은 자꾸만 미루게 된다. 나 역시 방학 때 일기를 미루었다가 날씨를 몰라서 애를 먹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생이 일기를 자주 미루다 보니 교사는 수시로 검사를 하게 된다. 검사 후엔 ‘검’ 또는 ‘참! 잘했어요!’라고 새겨진 도장을 찍어주거나 도움이 됨직한 댓글을 달아준다.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단연 교사가 달아주는 댓글이다. 바빠서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면 좋아하기는커녕 입을 삐죽거리며 일기장을 훔치듯 휙 낚아채 간다.

    이렇게 도장을 찍어주는 일이 잦아지면 학생들은 꾀를 부린다. 일기의 끝부분에 ‘선생님 말씀’이라고 표시한 빈칸을 그려놓거나 질문을 써 놓는 것이다. 도장 찍지 말고 댓글을 달아달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이쯤 되면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다.

    때론 당황스러운 일도 겪었다. 글씨 좀 깨끗이 써오라고 했더니 평소 글씨가 엉성했던 학생이 무척 잘 써 온 것이다. 글씨가 좋아졌으니 칭찬해 줄 일이겠으나 아무리 봐도 그 학생의 글씨로 보이진 않았다. 누군가 대신 써 준 듯해서 학생을 불러 물어보니 자신이 썼다고 답한다. 연필을 건네며 써온 글자를 따라 써보라고 하는데도 변함이 없었다. 방과 후에 친구들을 보내고 둘만 남은 자리에서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기가 안 썼다고 순순히 실토한다. 아까는 왜 거짓말을 했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한다.

    “그땐 짝지가 째려보고 있었어요.”

    짝지인 여학생과 자주 싸웠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더 놀릴 것이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쏟는다. 사과를 받으려다가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미안함에 도리어 사과를 하게 되었다. 이후로 그 학생의 글씨는 나아졌고 일기는 우리 반 학생들과 주고받는 대화의 창이 되어주었다.

    요즘은 일기 검사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뜸해지면서 학생과 소통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 듯하다. 돌이켜보니 내가 부족하나마 촉석루에 글을 실을 수 있게 된 것도 일기를 썼던 학창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지 싶다.

    손봉출(창녕 영산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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