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기고] 봄날에 쓰는 ‘늦은 반성문’- 윤호진(거제 시민)

  • 기사입력 : 2021-03-30 20:13:49
  •   

  • 목련이 필 때면 더 생각나는 은사님이 계신다. 세월이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데 올해는 유난히 그렇다.

    거제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내고 동부면에 있는 동부초, 동부중을 거쳐 마산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 전기가 들어온 산골에서 자란 나에게 마산은 꿈의 도시이지만 생경한 곳이었다. 태산목과 흐드러지게 피는 교정의 봄을 느끼면서 1학년을 보내고, 녹색이름표를 교복에 붙인 2학년 새학기에 반장선거에 출마했다. 나름대로 비전과 소신을 밝혔지만 떨어졌다. 집안의 구조적인 환경과 푸른 꿈에 대한 열망 속에서 고민이 시작됐다. 선거 며칠 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제안을 받았다. 선생님 댁에 와서 생활하고 공부하라 하시면서 손을 내밀어 주셨다. 짐을 싸서 선생님 댁서 유숙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어머니, 사모님, 세 아들, 딸 모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중학생 큰아들은 나와 같이 방을 사용했다. 아이들과 선생님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공간을 양보하고 불편함을 감수했다.

    고3 야간자율학습 때 저녁밥이 문제였는데 아들들이 따뜻한 국과 밥을 배달해 주었다. 비가 와도 가족들은 ‘사랑’을 날랐다. 사모님은 친아들 이상으로 아껴주셨다. 자녀 모두 남달랐다. 큰 아들은 서울법대, 딸도 서울대, 셋째도 서울대, 막내는 성대 경제학과를 진학했다.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내가 사법시험 2차에 낙방하고 군복무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군복무 중에 시골 인재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미로 중학생 5~6명의 멘토 역할을 위해 면소재지에 월세방을 얻어 생활했다. 선생님께서 모교 중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오셨다. 방이 귀한 지역이라 선생님께서 내가 사는 집에 월세방을 얻었다. 그렇게 다시 만났고 아들 같은 제자의 걸음을 묵묵히 지켜보셨다.

    나는 선생님 가족들 모두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좁은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4남매를 키우기에 벅찬 여건이었지만, 푸른 꿈을 안고 마산으로 유학 온 흙 묻은 학생의 손을 잡아주셨던 선생님과 그 가족의 따스함은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더 생각난다. 감사와 추억이 있던 집에 처음 들어설 때 꽃망울을 내밀던 목련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가슴 한 켠에 고마움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반성문을 쓴다. 청력이 약해져 잘 듣지 못하신다고 하는데, 마음으로 쓰면서 외는 ‘늦은 반성문’은 선생님의 마음에 들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한 번 이 계절 목련을 보면서 ‘이 세월까지 나를 있게 한 무수한 만남과 감사 속에 나는 이 땅에 무엇을 어떻게 흘려 보낼까? 그래 그렇지’ 하면서 마음속으로 감사를 외친다. 창가로 들어온 햇빛의 여운에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윤호진(거제 시민)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