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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2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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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새겨보는 우리 고장 독립만세운동- 한국성(경남동부보훈지청장)

  • 기사입력 : 2021-04-01 20: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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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손병희 선생이 3·1독립선언을 앞두고 천도교 간부들에게 다짐한 말씀이다.

    칠북 연개장터와 군북 등 함안 6개 지역 1만3000여명, 밀양 관아 앞, 표충사 등 밀양 지역 7000여명, 삼진의거 등 창원 지역 5000여명이 참여한 의거는 경남지역의 주요 3·1독립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6일 함안 김두량·김수강 등 29명이 결의하여 3월 9일 장날 정오 연개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경명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수천 민중이 각 마을을 순회하며 대한독립만세 행진을 전개했다.

    밀양에서는 윤세주와 윤치형은 동화학교장 전홍표, 밀양교회 교인, 밀양공립보통학교 졸업생 및 학생들과 함께 밀양만세운동을 기획,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등사하여 윤세주의 집에 숨겨두고 밀양 장날인 3월 13일 밀양 관아 앞에서 윤세주의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1000여명의 군중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4월 4일 5000여명이 참여하는 불교계 표충사 만세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창원의 진동, 진전, 진북 즉 삼진의 세 마을 주민이 전개한 4·3삼진의거는 당시 개항장으로 조계지 등 일제의 수탈 항구로 한국인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한 시기에 전개되었다. 가장 앞장서서 만세운동을 펼치다 일제 총칼에 여덟 분의 의사가 순국하였고 ‘8의사 창의탑’, ‘애국지사 사당’, ‘8의사 묘역’, 의거 준비장소인 ‘성구사’는 삼진의거의 뜻을 알리고 남기고자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경남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특징은 첫째, 다른 지역보다 격렬하게 특히, 함안, 창원, 하동, 합천, 진주, 김해 등지에서는 10회 이상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둘째, 함안 등 서부내륙에서는 지역 연대적인 대규모 폭력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난 반면, 동래, 밀양, 김해 등 동남부 해안·대규모 농업지역 또는 창녕 영산과 같은 상업 중심지역에서는 학생, 교사가 중심이 된 소규모 평화 시위를 특징으로 한다. 셋째, 농민·학생·기독교인·노동자 등이 중심이 된 타 지역과 달리 동래의 범어사, 합천의 해인사, 밀양의 표충사 등 불교세력, 함안 지역에서는 유림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대한인이 부활한 민족적 거사인 독립만세운동으로 국난을 이겨냈듯이 3·1독립만세운동의 정신과 포용·혁신의 힘으로 세계적인 재앙인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어려운 경제상황도 이겨내길 바라며, 아울러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삶이 영예롭도록 모두 존경과 예우를 잊지 않아야 하겠다.

    한국성(경남동부보훈지청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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