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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1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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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서당(書堂)과 초달(楚撻)- 이현근(광역자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21-04-08 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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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지역 일부 서당(書堂)에 다니는 학생 간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는 물론 성학대까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더니 서당측이 학생들에게 부당노동까지 시켰다는 주장까지 쏟아지고 있다. 인성과 예절교육을 배우는 곳으로 알려진 서당이 그곳에 다녔던 학생들에게는 폭력에 무방비로 방치된 지옥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서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알려진 고구려 시대 경당이 유력하다. 가장 성행한 시대는 조선시대다. 일부 선비들이 과거에 나서지 않고 가문의 제자나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고, 딱히 교육시설이 없었기에 초등교육기관으로 각광을 받았다. 주로 양반 자제들의 배움 기관이었지만 조선 말기에는 평민들과 천민들에게도 개방되면서 대중 교육기관이 됐다.

    ▼조선 후기 매관매직도 성행하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계층상승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면서 평민은 물론 천민의 자식들까지 서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1911년 전국 서당 수는 1만6540개소, 학동 수는 14만1604명이었고, 1918년에는 2만4294개소, 학동 수는 26만4835명에 달했다. 번성했던 서당은 해방 후 학제가 정비되면서 교육기능이 학교로 옮겨가 사실상 공식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은 사라졌다.

    ▼‘서당 아이들은 초달(楚撻)에 매여 산다’는 말이 있다. 훈장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며 서당 학동들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부모가 훈장에게 싸리나무 회초리를 한 묶음 주고, 교육을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 자식 맞는 것이 좋을 부모가 없지만 회초리를 주면서까지 아이들의 교육을 당부한 것은 훈장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정과 신뢰가 사라진 교육현장에서 폭력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기 바란다는 것은 근거 없는 욕심이다.

    이현근(광역자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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