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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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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청명(淸明)의 노래- 양미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21-04-08 21: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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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엊그제 가벼운 산행을 다녀왔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청명을 맞아 진달래가 지천인 산을 찾은 것이다. 참나무 오리나무에서도 새순들이 제법 파릇하니 자라고 있었다. 겨우내 마른 숲 냄새와 신록의 냄새가 묘하게 어우러져 몸 깊숙이 배어든 계절감에 마음까지 상쾌했다.

    이 무렵이면 논밭을 고르며 가래질 하는 농부가 보이고, 한 해의 농사가 기지개를 켠다. 겨울잠을 자던 뭇 생명들도 이 절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가 보다. 지역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집수리를 한다고 한다.

    들녘이나 언덕배기엔 쑥과 냉이와 머위 등이 제법 봄빛을 띠고 있다. 새참에는 갓 뜯은 나물류로 산채 비빔밥은 향기가 한 그릇이다. 청명은 식목일과 겹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가 나무 식재에 가장 좋은 절기이기 때문이다. 발에 밟히는 흙은 엊그제의 비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사방에서 생명의 냄새가 물큰했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기억도 가뭇한 ‘나무 타령’을 흥얼거려보았다.

    ‘청명 한식엔 나무를 심자. 무슨 나무를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 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바람 솔솔 솔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중간중간 가사도 빼먹어가며 노래 따라 봄 향기가 퍼져 올랐다.

    소리 없이 번져가는 연초록의 산등성이를 둘러보는 마음은 현실과는 사뭇 달랐다. 전 세계가 공통으로 겪은 일이지만 지난 한 해는 고통과 우울 그 자체였다. 코로나로 인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너도나도 문을 닫으며 거리는 깊은 침울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의 표정에도 웃음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시들고 메말라가는 세상 분위기는 도시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음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마음을 우울하게 한 기사를 읽었다. 대학생들이 학교 근처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동아리를 운영한다는 소식이었다. 문면(文面)만 가지고는 그들에게 밥을 주는 행위에 우울해질 이유는 없다. 코로나에다 일자리마저 아득해진 청년들이 길고양이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정서적 교감이 필요한 젊은이”들이라고 하지만, 정작 대학생들은 이리저리 내몰리며 지친 고양이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낀다 한다. 청춘들 스스로가 그들을 돌보며 위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는 마른 가지의 물관부로 봄의 수액이 돌 듯 우리네 몸에도 팬데믹의 백신이 혈관을 타고 돌기 시작한다. 머잖아 거리엔 푸른 웃음들이 싱싱하게 피어나 서로서로 반길 것을 의심치 않는다. 언덕길 옆으로 노란 풀꽃들이 주렁주렁 어우러져 있다. 눈 괴불주머니다. 아파트 주변에도 꽃을 피울 정도로 자생력이 강하다. 이 꽃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가슴마다 연초록 희망이 피어나기를 기도한다.

    ‘나무 타령’ 뒷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가자 가자 감나무, 오자 오자 옻나무, 죽어서도 살구나무, 방귀 뀌는 뽕나무, 춤이라도 추자나무…’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절에도 우리 조상들은 절망을 이기는 노래를 만들어 삶이라는 힘든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그래 청명에는 대자연만이 아닌 우리 인간들도 연초록의 혈행(血行)으로 어깨동무 힘차게 내일로 나아가며 함께 우거지자.

    양미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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