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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세일러문의 요술봉- 이서린(시인)

  • 기사입력 : 2021-04-15 20: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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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이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달의 요정 세일러문’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만화 영화가 주제는 아니었다. 요즘의 선거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이다. 우리는 보궐선거에서 정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다.

    너무나도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치 철학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토론이 이어졌다.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대비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정말 정의로운 사회라면, 죄를 지은 사람은 죗값을 받아야 하는데 잘 사는 사람도 있더라고 한 지인은 반문했다.

    대한민국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침략을 받으면서 끝까지 나라를 지켰다. 일본으로부터도 기어이 나라를 지켜낸 자랑스런 우리의 조상이 있다. 얼마나 힘들게 대한민국을 지키고 이루어냈는지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배우면서 알고, 또 안다. 그렇게 지켜낸 나라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좀 슬프지 않은가.

    왕이 백성을 버릴 때 백성은 나라를 지켰는데 정의는 백성을, 국민을 위한 정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한민국은 과연 국민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가. 요즘의 사회를 보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슬프다. 목숨을 바친 조상들에게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정의로운 사회는 자유를 바탕으로 다 같이 잘 사는 사회가 정의로울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에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하고, 국가에 해를 끼친 자에겐 벌을 받게 해야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국가는 어떤 보상을 해주었는가. 그리고 세상이 다 아는 거짓말과 죄를 저지르고도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이들을 보면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행동을 바로 하면 칭찬받고 잘못하면 꾸중이나 벌을 받아야 정의 아닌가.

    가장 기본인 집에서부터 정의는 시작되어야 한다. 요즘 자식은 다 귀해서 잘못을 해도 부모가 꾸짖지 않는 집도 있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괴롭혀도 벌을 받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올바른 정의를 몸에 익히지 못한다. 조그만 잘못과 공중질서를 어지럽혀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건 시간 문제다.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이야 어떻든 내 아이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도 아주 적었으면 좋겠다.

    오래전, 그러니까 1997년 KBS 방송국에서 방영된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보면 예쁜 소녀들이 악과 싸우는 내용이다. 그 당시의 인기는 엄청났다. 나의 딸도 푹 빠졌었다. 거기에 요술봉이 나온다. 세일러문이 악당들을 무찌를 때 샤랄라, 요술봉을 휘두르며 반드시 이런 대사를 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나는 지인들에게 말했다. 아이가 어릴 때 세일러문의 요술봉을 사줬는데 버리지 말고 갖고 있다가 써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 요술봉이 정말 있다면, 사회의 악은 물리칠 수 있을 텐데. 농담이지만 생각만 해도 통쾌하여 우리는 잠깐 웃었다.

    이서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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