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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령에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이 꼭 필요한 이유- 이달균(시인, 경남문인협회 회장)

  • 기사입력 : 2021-04-20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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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유산은 보석과 같다. 그대로 두면 흙 속의 돌에 불과하지만 캐내어 갈고 닦으면 빛나는 옥구슬이 된다. 최근 백과사전에 존재하는 이름들을 불러내어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미래에 물려주려는 향리의 움직임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의령에서 불을 지핀 가칭 ‘국립국어사전 박물관’ 건립사업이 그것이다. 지난 4월 16일 ‘경남도 지역혁신 신사업 지원 사업’에 박물관 건립사업이 최종 선정되었는데, 이는 정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경남도가 경남연구원과 연계해 시·군 여건에 맞는 신규 사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이기에 기대를 모은다.

    의령은 한글의 메카로 키워가야 할 중요한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 역사 속으로 걸어가 보면 한글 운동의 한 길목에서 ‘조선어학회 사건’과 만나게 된다. 이 사건은 1942년 10월 한국어사전 작업에 몰두했던 조선어학회 관계자들을 강제 연행하고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당시 연행되어 고초를 겪은 33명 중 경남 출신은 8명이며 3명이 의령 출신이다. 그 3명은 고루 이극로, 남저 이우식, 한뫼 안호상이다.

    이극로는 1920년 중국 상해 동제대학(同濟大學) 예과를 마치고 1927년 독일 베를린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 집행위원을 시작으로 조선어 운동에 몰두하였고 조선어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북한 초대 내각의 무임소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우식은 일본 동경(東京) 쇼쿠영어학교와 도요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귀국하여 백산 안희제와 함께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였고, 시대일보사, 중외일보사를 설립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안호상은 항일운동가인 안효제와 안희제의 영향으로 신학문의 길을 걸었고,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929년에는 독일 국립 예나(Jena)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엔 경성제국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48년 정부수립 때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했는데,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을 홍익인간으로 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사업은 여러 경로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2019년 10월 8일, 의령문화원 주최 ‘의령의 인물과 학문’이라는 학술발표회를 통해 조선어학회 활동을 소개하였고, 2019년 10월 31일, ‘경상대학교 국어문화원과 경남 국어책임관 국어정책 합동 세미나를 열어 경남의 한글학자들을 조명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 2020년 10월 27일 의령문화원이 가칭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을 위한 발기인대회와 창립 선포식을 가지면서 진척을 보게 되었다.

    의령은 경남에서 가장 인구가 적고 재정자립도가 열악하다. 그러나 곽재우로 대표되는 충의의 고장이란 인식과 함께 한글 사랑의 고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이 박물관이 건립된다면 충익사, 백산 안희제 생가, 현재 착공 중인 경남미래교육테마파크 등과 함께 시너지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이달균(시인, 경남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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