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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벼리’를 놓치지 마라 -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 기사입력 : 2021-04-27 21: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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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문(祭文)이나 축문(祝文)은 항상 ‘벼리 유(維)’ 자로부터 시작한다. 이 글자를 무수히 쓰고 들었지만 그 뜻이나 쓰인 연유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돌연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았다. ‘維’의 훈인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한다’라 설명되어 있다. 그물을 조작하는 밧줄이라는 말이다. 오므렸다 폈다 한다고 하니 아마도 당초에는 투망 형태의 그물에 쓰였던 모양이다.

    그 뜻을 알고 보니 維 자가 축문 등의 발어사(發語辭)로 쓰이게 된 연유를 대충 짐작할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인 벼리를 통해 제관의 정성을 축문으로 전하여, 인간과 귀신을 영적으로 잇게 하려는 정성스런 뜻이라 상정해볼 수 있겠다.

    그물의 벼리는 사람의 통제를 그물에 전달하는 수단이다. 벼리를 적절히 다루지 못하면 그물은 제 기능을 다할 수 없고, 벼리를 놓치면 그물도 잃는다. 그물은 오로지 벼리를 통해서만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니, 그물에게는 생명줄이다. 벼리를 놓친 그물은 그저 물을 오염시키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나라에도 그 명운을 지키는 벼리(維)가 있다. 춘추 시대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룬 명 재상 관중(管仲)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는 네 가지 벼리(維)가 있다(國有四維).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개가 끊어지면 위태로우며, 세 개가 끊어지면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멸망한다’(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 관중은 그 네 가지 벼리를 ‘예의염치(禮義廉恥)’라 하였다. ‘예(禮)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의(義)는 제멋대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며, 염(廉)은 잘못을 숨기지 않는 것이고, 치(恥)는 그릇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시대가 혼란하면 벼리가 위태롭다. 아니 벼리가 위태로워지면 시대가 혼란해진다. 건강한 나라는 벼리가 제 기능을 다하기에, 사람들은 절도와 옳음을 지키고 잘못을 숨기지 않으며 그릇됨에 대해 부끄러움을 안다. 나라를 바로잡아야 할 위기에는 절도가 무너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잘못을 숨기고는 뻔뻔하게 나서는 사람 즉 파렴치(破廉恥)한 사람들이 늘어난다.

    기업에게도 네 가지 벼리인 예의염치(禮義廉恥)를 그대로 적용해볼 만하다. 기업에게 있어 ‘예(禮)’는 고객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고객의 믿음은 기업의 가장 기초적인 생명줄이다. ‘의(義)’는 옳음을 가리킨다. 기업에게 있어 가장 최소한의 옳음은 생존과 성장이다. 그래서 기업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여 끝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염(廉)’은 잘못을 숨기지 않는 것이니, 위기가 닥쳤을 때 슬기롭게 관리하는 능력으로 정의하여도 좋겠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사고와 잘못을 피할 수 없다. 위기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기회로 전환하여 기업 이미지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증진시키는 기업도 있다. ‘치(恥)’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 즉 기업의 윤리를 지키는 것이다. 기업의 본질이 이익의 추구임은 틀림이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이익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그 기업은 그 경영을 지속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업 윤리는 기업 지속 가능성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관중이 말한 바와 같이, 기업도 그 벼리가 하나씩 더 끊어질 때마다 기울어지고, 위태로워지고, 뒤집히고, 끝내 망하고 만다. 네 개의 벼리가 모두 끊어져 망한 기업은 다시 세울 수 없다. 일부가 끊어지면 통제를 잃은 연과 같이 흔들린다. 그나마 남은 벼리를 잘 써서 기울면 바로잡고 위태로우면 안정 시키고 뒤집히면 바로 세울 기회는 있다. 하지만 그 회복은 지극히 고통스럽고 그럼에도 충분히 탄력적인 복귀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벼리를 결코 놓치지 마라.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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