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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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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수상한 역사 수업 - 김향지 (소설가)

  • 기사입력 : 2021-04-29 21: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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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부신 과학 발전에 어지럼증을 느껴서일까? 한편에서는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서사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물의 복고 열풍이 불고 드세다. 역사물이야 늘 있어 왔지만 요즘 역사물은 과거역사물과는 결이 다르다. 아예 새로운 이름까지 지어진 상태다. 이름하여 팩션(faction)이라 한다. 팩션이란 팩트(사실)와 픽션(상상)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신조어다. 소설, 영화, TV 드라마, 만화 등 전방위적으로 거세게 부는 팩션 열풍을 좌시할 수 없어서인지 국립국어원에서도 팩션을 ‘각색실화’로 명명하여 우리말 사전에 등재시켰다. 이름을 지어 준다는 것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는 거 아니던가.

    과거에도 역사물이 흥행하던 때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에 이광수의 ‘단종애사’ 홍명희의 ‘임꺽정’,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박종화의 ‘금삼의 피’ 1950년대 박종화의 ‘임진왜란’이나 1970년의 ‘세종대왕’, ‘장길산’,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등. 그 외에도 수많은 역사물이 있다. 그때 역사물은 어둠 속의 지표 역할을 했다.

    팩션은 기존의 전사(前史)로서의 역사물과는 역할이 다르다. 팩션의 소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영웅적 인물이 그 대상이다. 세종대왕, 정조, 이순신, 연산군, 광해…. 그중에서도 세종대왕은 단연 주연급이다, ‘뿌리 깊은 나무’, ‘나랏말싸미’, ‘천문’ 같은 팩션은 세종대왕이 주연이다. 그런데 이 팩션물에서의 우리의 성군의 모습이 좀 수상하다. 심지어 ‘뿌리 깊은 나무’나 ‘천문’에서 갈등하는 신하들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이 신하들에게 쌍욕을 날리는 우리의 세종대왕이라니! 세종은 이로써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성군의 이미지를 벗고 평범한 성정을 가진 보통 인간이 되어 버린다. 아스라이 먼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영웅의 모습이다. 팩션은 더 나아가 우리의 사고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바람의 나라’ 같은 팩션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3대 화가 중 한 인물인 신윤복을 남장 여자라는 설정으로 서사를 이끈다. ‘도모유키’ 같은 소설은 왜군 적장 ‘도모유키’의 시선으로 임진왜란을 증언한다. 최근에 모 TV드라마에서 방영되었던 ‘철인황후’ 같은 팩션물은 조선 말기 철종 임금의 왕비, 철인황후가 현대 남성의 영혼이 빙의된 설정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팩션에 대한 논란이 많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한다. 작가들은 팩션은 역사적 과업의 결과를 바꾸지는 않되 역사적 과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고뇌하는 영웅들의 내면적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역사이기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라 선을 긋는다.

    역사 왜곡 논란이나 어찌됐든 팩션이 흥기하는 이유는 팩션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물은 답이 정해진 시험 같은 결과적 세계가 우리에게 제시되었다. 팩션에는 역사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서사학에서는 일어났더라면 좋았을 혹은 일어날 수 있었던 세계를 ‘가능적 세계’라 한다. 팩션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 이런 ‘가능적 세계’가 된다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걸어온다. 우리는 팩션을 보면서 웃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데….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놀이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사고의 주체가 된다. 팩션은 우리의 사고를 전복 시키고, 해체시키면서 우리에게 반성을 요청한다. 참 수상한 역사 수업이다.

    김향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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