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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백현희(진해동부도서관 사서)

  • 기사입력 : 2021-05-02 2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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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유의 예민함으로 돌연사의 대명사로 알려진 개복치라는 물고기가 있다. 작은 자극에 개복치가 사망하는 모습에 빗대어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들을 개복치에 비유하기도 한다.

    특정 직업군에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데, ‘사서’라는 직업군은 압도적으로 내향성의 사람들이 많다. 조용하고, 나서는 걸 극도로 꺼리며, 사부작사부작 표나지 않게 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사서들이다. 책이 좋아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이 직업을 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소심하고 여린 성격들이다. 그런 개복치 같은 사람들이 신규 사서가 되어 가장 당황하는 부분이 본인의 성향과는 다르게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 앞에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직업을 잘못 택했나….’ 내가 신규 사서일 때 든 생각이 딱 그랬다. 내성적인 성격과는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야말로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망망대해에 겁도 없이 진출한 개복치와 같은 처지였다. 일한 지 몇 년이 지나고 ‘괜찮은 척’하는 사회인의 얼굴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도서관에서 사람을 대하면서 상처를 입는 경험은 어느 사서에게나 현재진행형이다.

    사서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할 때 교수님이나 선배 사서가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이 있다. ‘사서는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사서는 책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사람이다. 자료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적절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 도서관이 평생교육과 문화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직업의 본질이다. 그래서 단순히 책만 좋아해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직업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하면서 사람에게 상처 입어 마음을 닫고 싶을 때,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도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분들이다. 사서들만큼이나 여리고 소심하신 분들이 수줍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말이나 칭찬, 고마움과 미안함의 쪽지.(심지어 간식을 주시기도 한다!) 그런 동화책에 나올 법한 작은 기적 같은 순간들에 힘입어 도서관의 개복치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에서 도서관이 갈 길을 찾아서 오늘도 부지런히 살아남아 유영하고 있다.

    백현희(진해동부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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