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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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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감동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쇼를 희망한다- 김일태(시인·연출가)

  • 기사입력 : 2021-05-02 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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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7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전문가가 여당의 ‘내로남불과 불공정’, 야당의 ‘무능과 무기력’에 대한 국민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정치는 ‘쇼’가 바탕이므로 그러한 점에서 이번 보선은 유권자들이 코로나의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참다운 쇼가 어떤 것인지를 정치권을 향해 정신이 번쩍 들도록 크게 한 수 가르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승리에 대한 성취감이 크게 없다. 국민의 준엄한 분노에 미치지 못하는 정치권의 대응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자신들의 저질 쇼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실천보다 관객을 탓하는 말들과 면피용 이벤트들이 슬슬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요즘 우리는 정치권의 여파로 쇼를 위선과 동일시하고 있다. 위선은 말 뜻 그대로 착한 척 가장하는 것이다. 쇼는 눈속임과 사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적인 의미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현실과 진실을 좀 더 과장하거나, 가장하여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여 호응을 키워내기 때문이다.

    ‘쇼’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우리는 흔히 ‘연출’이라고 부른다. 연출은 철저히 ‘계획된 우연’의 발상에서 출발한다. 일반 상품의 마케팅에서 그렇듯이 철저히 수요자 중심의 발상이다. 실제 맞이할 상황에 대비하여 준비를 철저히 하되 현장에서는 우연히 맞이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하거나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수요자들의 욕구 성향과 이해 수준, 그리고 주위 분위기 등 직접 접해야 하는 상황을 철저히 사전에 가정한다. 그리고 메시지의 효율적인 전달과 극적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묘안을 짜 감동을 배가 시키려 노력을 한다. 그러나 연출은 늘 실패와 성공을 사이에 두고 줄타기를 한다. 잘하면 예술이고 기본을 무시하여 지나치게 파격적이거나 억지할 경우 암묵적 관객 조롱으로 비쳐 저급한 쇼나 사기로 냉혹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연출 영역에서 가장 하수로 평가 받은 것은 의도가 대상에게 미리 읽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모두가 알만한 정보를 자기만 알고 있을 거라는 판단의 무지에 기인한다. 이러한 어설픈 연출은 비웃음과 함께 분위기를 폭 가라앉게 만든다. 연출의 고수는 진실 이상의 감동을 오래 지속시켜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포장은 하되 진실과 먼 거리에 관객을 두지 않는다. 사랑과 진정성을 담아 무릎 꿇고 청혼을 하듯이 소비자를 받들어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또한, 절대로 관객보다 우월한 위치에 자신의 눈높이를 두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고 소비자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영혼까지 바치려 노력할 때 비로소 연출은 완성된다는 걸 안다. 그런 이유로 고수들은 연출 되지 않은 것처럼 연출하려 노력한다.

    정치에 관심 많은 유권자건 각종 이벤트를 관람하는 관객이건 우리 국민의 상식적 눈높이는 연출가들이나 연기자들 못지않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그 어떤 연출도 국민에게 쉽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 선거를 통해 우리는 확인했다. 섣부른 쇼에 한때 열광하던 유권자들은 무대 뒤의 위선을 보고 박수와 환호를 접고 분노를 민심이반이라는 형태로 표출한 것이다.

    쇼는 관객을 잘 섬겨야 성공한다. 눈높이와 기대치에 부응해야 성공할 수 있다. 관객의 시선을 대수롭잖고 저급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들은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한 두어 달 지나면 잊어버리겠지 하고 방심하거나 착각하는 순간 쇼는 망치게 된다. 이는 얼마 전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그는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리고 이후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멋진 쇼를 보여줬다. 자만하지 않는 진실한 태도로 전 세계인을 감동하게 했다. 이런 멋진 쇼를 얼마 남지 않은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보고 싶다. 가짜를 진짜처럼 혹세무민하는 저급한 쇼가 아닌 진짜를 더욱더 감동적으로 표현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 지혜를 모으게 하는 고도의 연출들이 여야 정치판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김일태(시인·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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