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봉숭아 - 박영기
- 기사입력 : 2021-05-20 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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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쓰고 보니 말이 풀려 꽃이 핀다
그 흔하디흔한 여름 꽃씨,
거칠고 단단한 발뒤굼치가 배꼽에 구멍을 뚫어
항아리 속으로 뛰어내린다
벼랑 끝에서 끝 맛을 본 이마가 빗물에 말랑말랑 풀린다
아픔인지 희열인지 엎어진 항아리 곁에서
뒤집히는 항아리
그 폭발을
나는 꽃이라고 말하는데,
너는?
☞ 울 밑에선 ‘그 흔하디흔한 여름 꽃씨’ 지천이다. 손톱 위에 올려 물을 들인다. 이 꽃물이 서리가 내리도록 지워지지 않으면 사랑을 만난다든가? 옛사랑이 돌아온다든가? 아무튼 ‘그 흔하디흔한 여름 꽃씨’.
어느 가수는 이렇게 노래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당신’. 박영기 시인은 ‘그 폭발을// 나는 꽃이라고 말하는데,/ 너는?’ 하고 묻는다. 화단(花壇)이 아니라도 지천으로 피어서 소꿉놀이도 되고 손톱의 꽃물도 되던 그 봉숭아.
‘벼랑 끝에서 끝 맛을 본 이마가 빗물에 말랑말랑 풀린다’ 늘 우리 곁 ‘그 흔하디흔한 여름 꽃씨’ 자주 눈길이 가는 그 꽃 ‘아픔인지 희열인지 엎어진 항아리 곁에서/ 뒤집히는 항아리’ 봉숭아라고 ‘쓰고 보니 말이 풀려 꽃이 핀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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