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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71년 만에 만난 아버지- 강창덕(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

  • 기사입력 : 2021-05-20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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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11일,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산 72번지에는 때아닌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71년 전,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유해 발굴 현장에서 유가족 정영우씨는 “아버지는 31살에 보도연맹 교육이 있다고 해서 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관지리 ‘화령골’로 불리는 곳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 등 40명 이상이 군용트럭에 실려와 학살됐다는 증언이 있었다. 발굴 결과 그 실체가 드러났다. 현장에서는 25구의 유해와 희생자들이 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버클 7개, 15개의 단추가 나왔다. 유해는 희생자들의 다리뼈가 대부분이었고, 두개골은 나오지 않았다. 희생자들이 차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무줄 2개와 반지 1개, 카빈소총 탄피 1개와 탄두 3개도 발견됐다.

    나는 어렸을 때 ‘골로 간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독립기념관 관장을 지낸 김삼웅 선생이 지은 책 ‘한국현대사 뒷얘기’에서 ‘골로 간다’는 말의 유래에 대해 “이 말은 6·25전쟁 때 생겼다. 당시 북한군의 우익 학살이나 국군의 좌익 학살이 모두 산골짜기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그래서 골로 간다는 말은 곧 죽음을 뜻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묻힌 희생자들이 71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된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한 일이다. 가족들이 생명을 잃게 되면서 유가족들이 가슴에 화를 안고 살게 되었고,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은 그대로다. 유가족들은 가슴속에 한 맺힌 응어리를 안고 숨죽이며 살아왔다. 손가락질만으로 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죽일 수 있었던 서슬이 시퍼렇던 시대에 학살이 일어난 곳들이다. 누구한테드러내 놓고 속 시원하게 속내를 이야기할 수 없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발굴현장에서는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70여년간 은폐의 고통 속에서 살아온 유가족의 슬픔을 절절하게 드러냈다. 수년 전 전국의 양민학살지를 다큐로 소개한 ‘해원’(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내다)이라는 영화 제목이 말해 주듯, 이제는 이들의 마르지 않은 눈물을 그치게 만들어 주었음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강창덕(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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