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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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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 윤영미(서예가)

  • 기사입력 : 2021-05-31 20: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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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붓을 들면서부터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글씨를 천직으로 여겨 쓰고 있으니 일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의 서여기인을 마주하면 심장이 뛰고 몸은 경건해진다.

    서여기인이 뚜렷하게 각인된 것은 지천명(知天命)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그 무렵 사람들은 어느 서예가의 글씨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고 글씨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글씨로 돈을 벌어 세금을 내게 되었다며 농도 주고받았다. 그러는 한편으로 객기에 휘두르는 붓이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내가 쓴 글씨를 사람들은 평가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야생마 같다”고 하고 누구는 “자유로운 영혼 같다”고 했다. 전통을 크게 벗어나지 않게 써 내려간 글씨를 보고는 선비의 인성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로 나는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돌아본 서력(書歷)에 서여기인이라는 넉 자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글씨에는 오롯이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이 그대로 스며 들어있다.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거나 원하거나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먹물을 붓에 듬뿍 실어 붓 끝으로 써 내려가는 희열은 그 어떤 감정보다 상위 감정이다. 머리와 가슴과 손끝으로 전해지는 성정(性情)의 집중력이 점을 내리 찍고 획을 긋고 자형(字形)을 만들어내니 이것을 어찌 서여기인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예술적 행위에 인문적 소양까지도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글씨라 할 수 있다.

    글씨를 쓰는 행위가 그 사람이니 붓을 잡는 순간부터 부끄러움에 아득해져 버린다. 글씨는 지문처럼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선생의 글씨를 따라 그대로 써도 똑같지 않다.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과 인품에 글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묻는다. “이 글씨는 어때요? 잘 쓴 글씨인가요?” “이 글씨 유명한 사람이 썼어요?” 입을 꾹 닫고는 지그시 웃는다. 글씨의 곧고(直) 바름(正)을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씨의 격(格)을 인지해야 했다. 얼른 포치(布置)와 기백(氣魄) 그리고 장법(章法)을 생각하며 “고졸한 느낌이 아주 좋네요” “질박하고 담박합니다” “기운생동하고 세련되었습니다”를 즐겨한다.

    서여기인을 인지하고 부터 남의 글씨를 함부로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글씨에 앞서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습이 생겨 버렸다. 붓 다루기가 일필휘지인 서예가의 인격이 사나워 매력이 줄어들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친일은 아무리 명필가나 문장가라도 글이나 글씨에 호응하지 않음도 서여기인이라. 서예를 깊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일상에서 몇 자씩 끄적이는 글씨를 보고 평가해 달라고 하면 그냥 그 사람의 성품대로 얘기해 버린다. 그러면 90% 정도는 적중하기도 한다. 그래서 글씨는 더더욱 엄중해졌다.

    서여기인은 필법을 익히기 이전에 한 서예가로 하여금 책임을 격하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마음이 번잡하거나 미울 때는 한동안 붓을 잡지 않는다. 서예가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기술이나 기교의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격을 경계하게 해 주었다. 유창한 글씨에 인품이나 학문의 깊이까지 느껴지면 나는 그 글씨에 빠져든다. 문자향이 깊었던 어느 선인의 대나무 그림을 보고 박물관 문이 닫힐 때까지 깊은 탄식으로 그 자리에 서 있던 적이 있다.

    書여기인. 詩여기인. 畵여기인. 文여기인. 農여기인. 글씨든 시든 그림이든 글이든 농사든 요즘 세상에 이보다 더 세련된 말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것이 그 사람일 수 있을 때 깊은 존경감이 느껴진다.

    나의 좌우명은 서여기인이다.

    윤영미(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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