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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현충일 조국, 조상 얼 찾기- 김수곤(창신대 중국 비즈니스학과 4년)

  • 기사입력 : 2021-06-09 19: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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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충일을 맞아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과 국립3·15 민주묘지와 함안 마리산 고분군을 찾았다. 일행은 3·15 민주묘지의 중앙 제단에 참배하고 올라가 김주열열사묘 앞에서 묵념한 뒤 숙연한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하자, 마산을 중심으로 분연히 일어났다. 4·19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대한민국 최초의 첫 유혈 민주화운동이었다.

    3월 15일 1차 의거 이후, 4월 11일 시민 모두가 노심초사하며 찾고 있던 김주열 군이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시체로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격분한 시민들은 더욱더 강렬하게 2차 의거를 일으키며 싸웠다.

    국민은 “부정선거 다시 하라”, “구속된 마산 학생 석방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4 ·19로 이어져,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국민이 주인으로 승리하게 됐다. 자유·민주·정의가 기본 정신인 3·15 마산의거는 현대사에 있어 최초의 민주·민족운동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으며 또한 민족 평화 통일운동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중국의 천안문사태와 비교하며 설명을 했다. 1989년 6월 4일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도시와 농촌의 빈부 격차가 심화되자, 수십만 명의 학생, 시민들은 정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언론 자유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당국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학생들과 현재 진행 중인 미얀마 사태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나눴다.

    이어 중국 학생들과 함께 함안 마리산 고분군으로 갔다. 함안군청에 주차하고 뒤편 언덕을 올라가자 곳곳에서 엄청난 고분군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은 외계 영화를 보는 것 같다며 너무 놀라워했다. 현재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 중인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됐다. 남북으로 이어진 주 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가지 능선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고분이 있다. 또한, 말이산의 북쪽 일대에는 아라가야의 전신인 삼한 시대 안야국(安邪國)의 목관묘와 목곽묘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가자 함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는데, 모심기가 끝나가는 풍경과 고분군의 녹색 잔디가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반대편으로 내려가 연밭으로 갔다. 2009년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고려 시대 연 씨를 700여년 만에 꽃을 피움으로써 전국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아라홍련’이 매년 7월 함안박물관에서 개화한다는 설명을 듣고 한 달 뒤 다시 오기로 했다. 이 연꽃은 ‘아라홍련’이라 이름 지어졌는데, 아라(阿羅)는 가야 시대 함안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나라의 이름인 아라가야(阿羅伽耶)에서 따왔다.

    차를 돌려 함안둑방과 처녀 뱃사공 노래비를 보고 옆에 있는 악양루에 올라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 한 수 읊고 돌아오는 길에 입곡 공원에 들러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유학생들은 현충일을 맞아 조상과 조국의 귀함을 더욱더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며 고향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겠다고 했다.

    김수곤(창신대 중국 비즈니스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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