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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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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코를 골다 - 최정례

  • 기사입력 : 2021-06-10 0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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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를 골았다고 한다. 내가 코를 골아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럴 리 없다. 허술해진 푸대자루가 되어 시끄럽게 구는 그자가 바로

    나라니, 용서할 수가 없다. 도대체 몸을 여기 놓고 어느 느티나무

    그늘을 거닐었단 말인가. 십 년을 키우던 고양이 코기토도 코를 골았었다.

    그 녀석 죽던 날, 걷지도 못하면서 간신히 간신히 자기 몸을 제집 문 앞

    까지 끌고 가 이마 반쪽만을 문턱에 들여놓은 채 죽어 있었다.

    아직도 녀석은 멀고 먼 자기 집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끌고 가기

    너무 고단해 몸을 버리고 가는 자들, 한심하다. 어떤 때는 한밤중에

    내 숨소리에 놀라 깨는 적이 있다. 내 정신이 다른 육체와 손잡고 가다가

    문득 손 놓아버리는 거기, 너무나 낯설어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다.


    ☞ 코를 골았다고 한다. 아니라고 우겨보지만, 녹음까지 해서 들려주는 해프닝이 벌어지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낯선 내게로 가는 길이다.

    삐삐 주전자는 물이 끓으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물이 물과 전혀 다른 모습인 수증기로 빠져나가듯이,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몸의 경계를 기어이 빠져나가는 것이 있다. 나는 나를 의심하며 늙어가는 것을 조금씩 실감한다. 허술해진 푸대자루라니!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숙제를 남겨놓고 자칫, 꿈속에서 엉뚱한 육체와 손잡고 너무 먼 곳까지 갈 수 있다.

    그 고단한 몸으로 마지막 넘어야 할 가장 험준한 산을 잘 넘을 수 있을까. 푸대자루를 질끈 동여맨다. 지금은 뜨겁게 끓어 넘칠 때가 아닌 듯, 요란한 경고음에 오히려 감사할 때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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