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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0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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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미적(美的) 거리- 안순자(수필가)

  • 기사입력 : 2021-06-13 2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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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 아파트에 담벼락을 따라 새 길이 생겼다. 흙길에 디딤목을 적당한 간격으로 깔아놓아 나무를 밟는 재미와 운치가 있어 자연히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걷다보니 간격이 문제였다. 일반 성인의 보폭보다 너비가 멀어 남자가 걸어도 겅중거리듯 보폭을 넓게 잡아야 했다. 직업의식 없이 대충 한 것 같아 한두 번 걷고는 걸을 때마다 신경 쓰는 것이 싫어 다른 길로 다녔다.

    몇 개월 후 우연히 그 길을 다시 걷게 되었는데 이용하는 주민들의 불평이 있었는지 디딤목을 새로 깔아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숫제 종종걸음을 쳐야 할 판이다. 제 아무리 의젓한 사람이라도 위엄은커녕 촐싹거리듯 잰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다. 으레 사람의 걸음 표준너비가 나와 있을 텐데 이렇게 아둔하게 공사하다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떤 대상을 보고 미적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뜻하는 ‘미적(美的)거리’라는 말이 있듯 사물이나 인간관계에 적절한 거리 조율이 필요하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는 ‘칼릴 지브란’의 시 구절도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알맞게 소통할 수 있는 간격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 자식 간에도 틈새를 잘 조정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너무 멀면 소원해질 것이고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으면 독립이 어렵다.

    도로를 주행하는 앞차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도 추돌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현시점에서 강조하고 있는 옆 사람과 거리두기도 팬데믹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 지켜야 할 수칙이다. 미구에 우리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지금 감수해야 하는 물리적 거리이다. 앞의 디딤목 공사도 거리조절에 실패해 편리함에서 멀어진 결과를 빚은 것 아닌가. 거리두기를 지혜롭게 잘 조절해야 원만하고 아름다운 관계가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을 하려면 집중해서 일해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균형 있게 설계할 수 있는 슬기로운 삶의 보폭이 필요하다. 이것을 소홀히 하여 생활전선에서 내려앉아야 하는 불가피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이 점을 잊고 산다.

    안순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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