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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소도둑을 대하는 자세-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21-07-06 19: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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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썩은 정치는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급기야 지난 5월 11일, 국민 1618명은 “조국 전 장관의 숱한 거짓말과 불법행위 등으로 우울증·탈모·불면증·울화병·자살충돌·대인기피·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다”며 1인당 100만원씩 총 16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소위 유명인들, 특히 위정자들이 저지른 수많은 부정과 뻔뻔스러움에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리 자신의 건강만 해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이미 ‘소도둑’ 수준의 프로 도둑이므로 죄책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빗발치는 비난에도 망가진 정신 회로가 고쳐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일종의 ‘악의 평범성’에 이미 병들어버렸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한 발 물러서서 냉철하게 비난하는 게 낫다.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분명히 기억은 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훗날 결정적일 때에(투표든, 여론 형성이든) 국민의 무서움을 보여줄 수 있는 거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명언도 있지 않는가.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은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중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와 나치 2인자 하인리히 힘러의 최종 지휘 책임 하에,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계적으로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뒤 히틀러와 힘러는 자살했고 많은 전범들이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지만(1946년), 아이히만은 사라졌다. 그는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압송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세기의 재판을 받아 1962년 사형이 집행됐다.

    한나 아렌트는 재판을 참관했다. 당초 예상했던 아이히만의 모습은 악마와 같은 희대의 살인마였다. 하지만 아렌트가 묘사한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의 정신 상태를 하고 있었고, 가족을 챙기는 부족함 없는 아버지이며, 자기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주어진 (나치의) 법을 잘 수행하는 시민이었다. 다만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 몰랐으며, 자신이 행하는 일의 의미를 물어보지 않고 그저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행한 일의 결과는 엄청난 악이었지만, 그 악의 뿌리는 오히려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 민족도 극악무도한 일본에 의해 수많은 학살을 당했다. 악의 평범성을 증명하는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비시 정부 하에서도 자행됐고, 19세기 말부터 러시아 혁명 전까지 격렬한 포그롬(pogrom, 유대인 박해)이 제정 러시아에 몰아닥쳤으며, 터키 영토와 러시아 내 접경 부근에서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터키군의 무참한 학살에 150만명이 넘게 숨졌으며, 스탈린 시절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holodomor, 대기근 학살)도 있었으며, 미국·캐나다·호주의 원주민에 대한 학살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잔인한 것은 신대륙 발견 후 150년 간 당시 원주민의 90%인 7500만명을 대학살한 아메리카 대륙의 홀로코스트다. 정복자였던 서양은 홀로코스트가 아니라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대다수가 사망했다고 강조한다. 그들이 자행한 학살은 숨겨버린 채 인구 소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프레임에 갇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만 경도돼버렸다.

    온갖 부정과 악행을 저지르면서 혀로만 ‘국민’을 들먹일 뿐, 실제로는 국민을 극도로 피로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은 현대판 홀로코스트 자행자이다. 함량 미달의 위정자들, 이들 주변에서 수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한 기회주의자들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무너졌는가. 이들을 똑똑히 기억해두었다가 표와 민심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행복은 그저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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