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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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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섬진강 동생이 보내 준 지리산 녹차- 이지순(도서출판 뜻있는 대표)

  • 기사입력 : 2021-07-11 20: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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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섬진강 옆에 사는 동생이 해마다 지리산 야생녹차를 보내준다. 어느 때는 많이 덖어 맛이 안나고 어느 때는 덜 비벼서 맛이 덜한 것 같다. 집에서 솥을 걸고 하는 일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맛이 좀 그렇네!” 하면 동생은 “그래도 지리산에서 기운 좋은 차를 딴 거다, 언니 건강 생각해서 땅 기운이 제일 좋다는 곳에서 제일 어린 잎을 따 넣었다” 한다. 마치 자기가 녹차의 어린잎에 지난 겨울 동안의 햇볕까지 다 담아 놓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다. 동생은 “기계로 한 게 아니고 다 수제라 다른 데 꺼 하고는 달라, 녹차는 하동이 최고야, 이상한 거 먹지 말고 제발 챙겨 먹고 아프지 마”라고 주섬주섬 지청구를 섞어 말을 늘어놓는다.

    아편에 중독되어 망하는 일은 없어도 녹차에 중독되면 서서히 망한다는 중국 속담이 있듯이 한번 녹차를 마시면 좀 더 좋은 것, 좀 더 비싼 것을 찾게 된다. 이미 이처럼 좋고 비싼 것에 익숙해져 동생이 보내준 녹차를 마시면 때로는 맛이 안 느껴질 때도 있다. 맹물을 끓인 것 같을 때도 있다.

    찻잎을 덖는 일은 찻잎의 산화와 발효를 막고 세포 조직을 부드럽게 해서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어떻게 덖느냐에 따라 맛이 꽤나 달라진다고 한다. 생생한 골짜기의 밝기가 남겨지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바위틈의 무게가 남겨지기도 하고 현묘한 정신의 깊이가 스며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동 동생이 보내 준 지리산 녹차에는 이런 것이 없다. 하지만 동생이 보내 준 녹차에는 동생과 내가 살아온 오랜 시간의 두꺼운 켜가 들어 있다. 이제는 그 어떤 차보다 동생 차가 맛이 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때때로 혼자 창원 집의 거실에 앉아 동생이 보내 준 녹차를 우린다. 신령스러운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시간이 깊고 고요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하동에 있는 동생이 슬며시 내 손을 잡아준다, 어깨를 토닥여 주기도 한다. “설거지 안해?” 꽥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이지순(도서출판 뜻있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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