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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90) 서여기인(書如其人)

-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

  • 기사입력 : 2021-07-27 08: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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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기도구 가운데서 모필(毛筆)이 글씨 쓰기가 가장 어렵다. 어려운 만큼 쓰여지는 글씨는 다양하고, 예술적인 가치가 아주 높다. 그래서 글씨의 경지는 끝이 없는 것이다. 천하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백 자 써 놓으면, 마음에 드는 글자는 한두 자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니, 나머지 사람이야 언급할 것도 없다.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가 중국의 서예를 보고 “조형(造型) 예술의 극치다. 내가 서예라는 예술이 있는 줄 먼저 알았더라면, 그림을 안 그리고 반드시 서예를 했을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글씨는 손으로 남긴 흔적이 아니고, 그 속에 그 사람의 인격, 기질, 학문, 경험, 취향, 욕구 등 모든 것이 담긴다. 그래서 청(淸)나라의 학자 유희재(劉熙載)는 “글씨는 같은 것이다. 그 학문과 같고, 그 재주와 같고, 그 뜻과 같은 것이다. 총괄하여 ‘그 사람과 같다’고 할 따름이다.(書, 如也. 如其學, 如其才, 如其志, 總之曰, ‘如其人而已)”라고 했다. 1994년 필자가 북경(北京)에서 살 때, 우리나라 제일의 서예가로 추앙받는 분이 와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도록을 얻어, 중국 최고의 서예가 북경사범대학 진영룡(秦永龍) 교수에게 보이며 “글씨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첫 마디가 “이 분이 학문이 없지요?”라고 하고는, 별 관심 없는 듯 그냥 밀쳐 버렸다. 이름 높은 서예가라 해도 글 내용은 모르고, 단지 모양만 본떠 쓰는 것에서 그 수준을 읽어 낸 것이다.

    글씨의 평가는 쉬운 일이 아니다. 평가하는 사람이 글씨를 쓸 줄 알아야 하고, 역대 많은 명필들의 여러 법첩(法帖)을 두루 탐구하고 서예이론에도 정통해야 한다.

    그런데 글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글씨를 쉽게 평가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사회적인 지위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평가하면, 그 평가에 의해서 어떤 사람의 서예작품이 실제 이상으로 대우를 받는다.

    이승만 대통령은 글씨가 수준이 되었는데도, 함부로 쓰지 않아서 지금 상당히 대우를 받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준이 못 미치면서 글씨 쓰기를 좋아하여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지금은 버려지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중국 모택동은 글씨 쓰기를 매우 좋아하고, 늘 모필로 글씨를 썼다. 북경대학 등 대학 명패의 70퍼센트가 그의 글씨다. 어느 정도 수준은 되지만, 각 대학에서 최고권력자에게 아첨하느라고 받아 건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글씨로 도배를 해 놓아 흉물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씨의 글씨를 좋아하여, 지금은 그 글씨가 사방에 퍼져 나가고 있다. 마침내 국정원 표지석과 서울시경 표어도 신씨의 글씨로 만들었다. 그는 간첩죄로 복역 중이던 1970년 전향서를 썼다. 그러나 석방 뒤 기자회견에서 “전향을 일찍 했어요. 그러나 사상을 바꾼 것은 아니고, 가족들이 그게 좋겠다고 해서 한 겁니다”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의 글씨를 국정원 표지석에 꼭 새길 것이 있을까? 전혀 명필도 아닌데.

    * 書 : 글 서. * 如 : 같을 여.

    * 其 : 그 기. * 人 : 사람 인.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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