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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이제 목메달이 아닌 당당한 4위- 이현근(창원자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21-08-10 20: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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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32회 도쿄올림픽이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당초 2020년 여름에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확산으로 1년간 연기되었다가 대부분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등 많은 제약 속에 진행됐다. 세계적 팬데믹이라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무려 5년을 기다려온 선수들은 올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땀과 열정을 보여줬다.

    이번 도쿄올림픽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전 올림픽에서는 ‘일등밖에 기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로 금메달을 따는 선수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면 이번에는 유독 ‘4위’에 더 많은 얘깃거리와 관심이 쏠렸다.

    대회가 끝나고 각종 SNS에서도 금·은·동메달을 따지 못한 4위 선수에 대한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동안 메달을 따지 못한 4위를 비하해서 ‘목메달’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메달을 따지 못해 목을 맬 일이라는 섬뜩한 표현이기도 하고, 노(NO)메달을 희화한 표현이기도 하다.

    사실 올림픽에서 ‘4위’라는 위치는 아쉬움 그 자체다. 시상대에 오를 수 있는 선수는 3위까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포상금은 물론 연금, 병역 등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유독 ‘4위’ 선수들이 회자되는 것은 메달리스트 못지않게 깊은 감동을 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12개 종목에서 4위에 올랐다.

    남자 높이뛰기에서 우상혁은 2m 35로 24년 만에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한국육상 트랙과 필드에서 최고의 성적인 4위를 차지했다. 한국 ‘다이빙 간판’ 우하람도 3m 스프링보드에서 4위를 기록했다. 허리부상에 시달리다 오랜 재활 끝에 어렵게 출전권을 따낸 이선미는 여자 역도 87kg급 용상에서 4위에 올랐다.

    남자 사격의 한대윤은 1988년 사격에 결선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남자 25m 속사권총 결승에 올라 4위가 됐다. 류성현은 체조 마루운동에서, 경남도청 소속 한명목은 역도 남자 67kg급에서, 유현지는 유도 여자 78kg급에서, 남태윤과 권은지는 사격 10m 공기소총 혼성에서 4위에 각각 올랐다.

    한국 근대 5종 수준을 세계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정진화도 4위를 기록했지만 함께 고생해온 후배 전웅태가 3위로 메달을 따게 되자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깊은 감동을 줬다.

    세계랭킹 11위로 기대하지 않던 여자배구가 전력 열세라는 평가에도 최선을 다해 세계 5위 일본과 세계 4위 터키를 잇달아 누르며 ‘4강 기적’을 만들어내 국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같은 4위지만 예외도 있다. 야구팀은 경기마다 악착같은 근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출전한 6개팀 가운에 4위로 밀려났다. 국민들은 이들이 인기나 실력에 비해 고액연봉을 받고 있지만 예전 선배야구인들이 보여준 헝그리정신이 사라지고 배가 불렀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여하튼 올림픽은 끝났고, 당분간 선수들의 무용담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등지상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일등이 아닌 4위를 주목하며 노력하는 과정과 도전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는, 달라진 모습이 더없이 반갑다. 5위, 6위, 7위, 꼴찌도 당당해지는 세상이 한 발짝 가까워지는 것 같다.

    이현근(창원자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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