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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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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솔바늘- 설복도

  • 기사입력 : 2021-08-19 08: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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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밭 그늘에 누워 하늘을 보면

    수없는 솔바늘이 바느질한다


    드넓은 하늘에 넘치는 옷감


    비 개인 오후엔 색동옷 만들고

    저녁놀 따다가 분홍 옷도 만들고


    아가구름 사슴구름 오리구름도

    한 번은 옷섶을 다듬다 가고


    살래살래 풋바람 저울질하는

    그런 날엔 하늬바람 속살을 깁고


    날마다 조각달 기워가다가

    동그란 내 구슬에 무슨 수를 놓을까


    ☞ 더위가 한풀 꺾이자 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떼지어 울던 매미가 사라지고 어느새 창가에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나무 푸른 향을 맡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청명한 날이다.

    솔밭 그늘에 누워 하늘을 보면, 하늘을 향해 뾰족뾰족 내뻗은 솔잎은 솔바늘이 된다. 수많은 솔바늘이 부지런히 움직여 하늘에 수를 놓는다. 비 갠 오후, 앞산에 생긴 무지개를 끌어다 색동저고리를 만든다. 저녁 무렵에는 노을빛을 따다 예쁜 분홍 치마도 만든다. 불어오는 바람의 결을 잡아 바람 무늬를 수놓고, 아기자기한 구름이 지날 때는 그 옷섶도 매만져준다.

    밤이면 어두운 하늘에 샛노란 조각달을 만든다. 달은 날마다 점점 차오르고, 솔바늘은 마침내 환한 보름달을 완성할 것이다. 보름달 같은 내 구슬에는 무슨 수를 놓을까. 떡방아 찧는 토끼를 수놓을까, 매일매일 자라나는 내 꿈을 수놓을까.

    이 동시를 읽으면 솔바늘이 만든 하늘의 장면들이 고운 수채화가 되어 선연히 살아난다. 솔바늘이 만든 작품에는 각각의 사연이 있어 한편의 동화를 보는 듯도 하다. 하늘에 아이의 마음을 수놓은 시인의 감성이 동그란 구슬에 와 맺힌다.

    솔밭 그늘에 누워 하늘은 바라보자. 가슴 속에 묻어둔 채 잊고 지냈던 나만의 구슬을 꺼내 고운 수를 놓아 보자.-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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