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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⑧ 대구 삼성상회 건물과 이건희 생가

[1부] 또 하나의 가족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⑧ 대구 삼성상회 건물과 이건희 생가

  • 기사입력 : 2021-08-20 08: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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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철은 무역업외 제조 판매업도 하기로 결심을 하고, 1938년 3월 1일 대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삼성상회 본사는 대지면적 약 132㎡에 지하 1층, 지상 4층, 높이 약 13m로 1934년에 지어진 상업용 목조건물이다.

    1층 우측에 제분기, 제면기를 설치하여 국수를 생산했고, 좌측에는 방과 사무실로 사용했다. 2~4층은 자재 창고와 진열대, 창고, 국수 건조장 등으로 사용했다. 당시 좌판이 대부분이었던 대구 서문시장에서 삼성상회 간판이 걸린 4층짜리 건물의 사업장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목조건물로 건축된 지 60년이 경과하자 붕괴 위험이 있어 1997년에 철거되었다. 대구 중구청에서는 삼성상회가 대구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곳으로 인정, 철거된 삼성상회 건물터에 문화적 가치가 있는 기념지로 조성해 놓았다. 현재 이곳 삼성상회 건물터에는 삼성상회 관련 기록물과 조형물을 길잡이식 해설판으로 설치해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제일모직 옛 터인 대구 삼성창조경제단지에 1938년 설립 당시의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시켜 놓았다.
    제일모직 옛 터인 대구 삼성창조경제단지에 1938년 설립 당시의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시켜 놓았다.
    삼성상회 터 5분 거리에 이건희가 태어난 생가가 있다./이래호/
    삼성상회 터 5분 거리에 이건희가 태어난 생가가 있다./이래호/

    그후 2017년, 제일모직 공장터였던 대구 북구 침산동 삼성창조경제단지 안에 삼성상회 설립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설립 초기의 건축물과 동일하도록 철거 당시 모아 두었던 자재를 복원할 때 재활용했다.

    이곳 삼성상회에서 5분 거리에 이병철이 거주한 주택이 있다. 눈짐작으로 70~80여평 대지에 ㄱ자 형태의 한옥 본채 건물과 마당 그리고 훗날 세워진 듯 본채 맞은편에 일자형 별채가 있다. 본채는 3평 크기의 방1개, 2평 크기의 방 3개, 별채에 방2개 규모로 옛날 가옥 형태라 아담하다. 이곳은 이병철이 대구에서 삼성상회, 조선양조를 경영한 1938년부터 1947년 서울로 이사가기 전까지 약 10년간 살았던 곳이다. 이건희 회장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오토바이 상가 밀집지역으로 주위가 어수선하지만 삼성상회에서 거주하는 집까지는 5분 거리도 되지 않는다. 대구에 가면 이병철 부자가 걸었던 이 골목길을 꼭 한 번 걸어가 보시라. 골목 어디에선가 들려올 것 같다.

    “건희야, 너는 대한민국 제일의 기업인이 되거라. 사업보국의 정신을 잊지 말아라”.

    1938년 3월 대구 인교동에 삼성상회 설립
    붕괴위험 있어 1997년 철거·기념지 조성
    2017년 삼성창조경제단지에 건물 복원

    삼성상회서 5분 거리에 이병철 머문 주택
    서울로 가기 전 1947년까지 10년간 살아
    이건희 회장 태어나 어린시절 보낸 곳

    삼성상회는 1941년 주식회사 삼성상회로 법인전환 후 주권을 발행하였다. 주주 허순구는 진주에 문성당 백화점을 설립한 이병철의 매형이다./허순구 가족 제공/
    삼성상회는 1941년 주식회사 삼성상회로 법인전환 후 주권을 발행하였다. 주주 허순구는 진주에 문성당 백화점을 설립한 이병철의 매형이다./허순구 가족 제공/
    별표국수 거래처를 인수한 풍국면(국수)의 자동화생산 공장내부 모습./풍국면/
    별표국수 거래처를 인수한 풍국면(국수)의 자동화생산 공장내부 모습./풍국면/

    # 대구와 국수

    삼성상회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영남의 물자가 모이는 대구 상업의 중심지 서문시장이 있다. 서문시장은 대구 최대, 최고의 시장답게 먹거리도 많지만 대한민국 면 애호가들의 필수 방문코스로 수십여개 밀집된 국수거리가 있다. 미식가들은 대구에서 생산되는 국수를 평가할 때 “면발이 찔기다”고 한다. 면이 찔기다는 것은 그만큼 쫀득쫀득하다는 표현이다. 삼성상회에서 생산한 이병철의 별표국수도 당시에는 가장 인기 있는 상표 중 하나였다. 별표국수는 이병철이 서울로 사업지를 옮긴 후에도 계속 생산하다가 1958년 국수 사업을 종료하였다.

    대구가 오늘날까지 국수도시라는 이름을 이어 오는 것은 1933년에 설립된 ‘풍국면(국수)’이 있다. 풍국면은 삼성상회가 별표국수 생산중단시 거래처를 인수받을 정도로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는 대구 대표 국수전문 생산업체였다. 1970년대 풍국면은 TV 광고를 할 정도로 호황이었는데 당시 모델이 당대 최고의 배우인 ‘신성일, 엄앵란’이었다. 대구는 1980년대까지 전국 국수시장의 50%를 점유할 정도로 유명한 국수생산 도시였지만 이후 라면이 대체재로 급성장하면서 국수도시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나라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의미의 ‘풍국면’은 밀가루가 투입되어 국수가 될 때까지 사람 손이 하나도 닿지 않는 자동화 생산으로 전환하여 대구의 옛 국수명성을 알리고 있다. 현재 풍국면은 국내 최초 기업형 최장수 국수공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구가 이렇게 국수로 유명한 첫 번째 이유는 ‘대구 날씨’ 때문이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한 곳으로, 일조량이 풍부해 국수의 건조가 타 지역과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도 현지 조사를 끝내고 서문시장 내 국수포차에 들렀다. “아지매, 이거 별표국수요?” 물으니 “오데예, 아닙니더, 지금은 별표국수가 안나옵니더, 풍국국수입니더.” 국수맛처럼 맛깔스럽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돌아온다.


    이건희 생가 옆 담장에 쓰여진 부자 기받기 풍경.

    # 이병철과 음식이야기 1. 일본요리사의 야단= 이병철이 손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 일이 있다. 일본에서 유명한 복요리집이다. 그런데 행사가 늦게 끝나 이병철 일행이 예약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다. 식당에 들어서는 일행을 보고 식당 요리사가 화를 냈다.

    “복요리를 맛있게 드시려면 시간이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약시간에 맞추어 조리를 해두었는데 예정보다 1시간이 늦어 복요리 최고의 맛을 잃어 버렸습니다. 제가 복요릿집을 운영하는 것은 돈을 벌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최고의 맛을 손님들에게 서비스하는 데 있습니다. 제가 최고의 요리를 만들었는데 손님이 제 시간에 오지않아 제 맛이 안나는 것이 억울합니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장인정신 가득한 일본 요리집 주인에게 예약시간보다 늦었다고 야단을 맞은 것이다.

    # 이병철과 음식이야기 2. 초밥알을 세어보아라= 이병철은 1979년 호텔 신라를 개관했다. 당시 외국어 이름으로 작명하는 게 유행이었지만 신라라는 이름을 택한 사유가 있다. 찬란한 우리 고유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 시대의 그 우아한 품위와 향기를 재현시켜 보기 위함이었다. 현관 지붕에는 청기와를, 로비와 라운지, 객실 등에는 신라의 꽃격자·무늬봉, 황도무늬 등으로 꾸며 신라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렸다.

    이병철은 우동과 초밥 등 일식을 좋아했다. 어느날 이병철 회장이 조리부장에게 일본에 있는 식당을 소개했다. 규모도 아주 작고 외관도 아주 초라하게 보이는 일본의 초밥집에 가서 배워올 것을 지시하였다. 얼마 후 이병철 회장이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일식당에 들렀다. 조리부장은 열과 성의를 다해 최고의 초밥을 만들어 드렸다.

    이병철 회장은 1976년 위암 수술 이후 금연과 소식의 절제 생활을 하셨고, 결코 과식하는 법이 없었다. 좋아하는 초밥도 밥 무게와 생선 무게 15g으로 늘 6~8점만 먹었다. 만족해 하며 식사를 하시는 회장을 보고 조리부장은 “회장님, 저는 이제 더 배울 것도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이병철 회장이 질문을 하였다. “조리부장, 지금 내가 먹은 초밥 한 점에 밥알은 몇 알 입니까?” 밥알의 숫자를 몰랐던 조리부장은 당장 밥알을 한 톨 한 톨 헤아렸다. “320알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점심에는 식사용으로 먹기 때문에 초밥 한 점에 320알이 적당하지요. 그러나 저녁에는 술도 한잔하고 안주도 먹기 때문에 점심보다 양이 조금 적은 280알 정도가 가장 좋습니다. 요리에도 장인정신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시면 그 분야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병철의 한마디> 성공에는 기교가 없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이 래 호 ㈜차이나로컨벤션 대표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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