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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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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계약, 그 장미와 가시 -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 사무소 대표 변리사)

  • 기사입력 : 2021-08-29 21: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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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 사무소 대표 변리사

    미국 볼티모어 야구단의 크리스 데이비스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한때 아메리칸 리그의 홈런왕으로서 2016년에 볼티모어와 7년에 약 1900억원의 잭팟 계약을 했었다. 그런 그가 겨우 두 시즌 반짝 뛰고 나서 부상과 수술로 지지부진하다 결국 중도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계약이 끝난 후에도 15년간 매년 40억원 내지 16억원의 거액 연봉을 꼬박꼬박 받게 된다. 계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먹튀’ 논란은 있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편히 넉넉한 수입을 보장 받으니 기가 막힌 보험을 든 셈이다. 그러나 구단 입장은 모르긴 해도 보통 속 쓰린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그 내부에서는 자신들이 어떤 멍청한 짓을 했는지 따지며 통렬히 반성하고 있을지 모른다.

    유사한 사례는 기업들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분쟁 원인이 된다. 한 지인은 새 사업거리를 찾던 중 농업 기계를 개발하던 개발자들을 만났다. 그들이 부풀려 말한 예상 매출과 이익을 믿고, 그들을 영입하면서 연봉과 기술료 지불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매출이 없어, 부득이 사업 중단을 선언하고 급여 등의 지급도 끊었다. 이에 급여 등 청구 소송이 제기되었고, 결국 회사는 곱다시 모두 물어주고 나서야 그 사업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계약서를 보니 그들의 업무 성과에 대한 책임 규정은 없고 회사의 비용 지급 의무는 명료히 규정되어 있었다. 그저 사람만 믿으면, 평생의 친구와 인생의 가르침 중 어느 하나를 얻게 된다는 격언이 있다. 이 사건은 마음의 상처와 함께 귀한 인생의 가르침을 남겼을 것이다.

    계약은 가끔 그 말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희망이다. 새로운 시작이며 도전이기도 하다. 때론 오랜 노력과 준비의 귀한 성과이며, 새로운 동지와의 다부진 결의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계약은 대체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정서 속에서 맺어진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계약이 얻고자 하는 장미 속에는 치명적인 가시가 숨어 있다. 보통 계약서를 꺼내봐야겠다고 할 때는 이미 그 가시가 작동한 상태이다. 그 가시를 계약서가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면 훌륭한 계약서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낭패이며 재앙이 된다. 다툼이 일어나 관계가 무너지고 좌절과 고통을 겪는다. 그런 계약이나 분쟁은 흔하다.

    그래서 계약서의 진정한 역할은 ‘희망적인 목표’ 선언에 있기보다는 ‘위험 관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로가 함께 꿈꾸는 장밋빛 목표의 이면에 숨은 가시들을 면밀히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계약서의 진정한 존재 이유이다. 그 가시들은 주로 당사자의 착오, 사고, 실패, 변심, 사정 변동 등에 기인한 것들이지만, 당사자에게 부득이한 외부 요인도 많다. 예를 들어 최근처럼 원자재 가격이 크게 인상될 때 원자재 가격 변동과 납품 가격이 연동되도록 계약해 두었다면 무척 다행한 일일 것이다.

    손자병법은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반드시 이로움과 불리함을 함께 고려한다. 불리할 때 이로움을 찾아내면 믿음을 다질 수 있고, 이로울 때 불리함을 고려하면 재난을 풀어낼 수 있다(是故智者之慮 必雜於利害 雜於利而務可信也 雜於害而患可解也 _ ‘九變’).” 계약은 당사자들이 함께 이로움을 도모하는 약속이다. 그 이로움 속의 불리함, 즉 부정적인 요소를 잘 찾아내어 대책을 마련해 두어야만 재난을 면할 수 있고, 불리함들이 있음에도 그 속의 이로움을 생각하면 서로 및 일에 대한 믿음이 다져질 것이다. 이처럼 이로움의 장미와 그 속에 숨은 모든 불리함의 가시를 예측하고 대비하여 재난을 예방하는 것이 바로 계약서이다. 그런 예측과 대비에 실패한다면 멍청한 계약의 주인공이 되어 가시의 따끔한 보복을 받게 된다.

    미 프로농구팀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쿠반이 말했다. “계약할 때에는 항상 누가 멍청이인지를 찾아보라. 멍청이를 찾을 수 없다면 그 멍청이는 바로 너 자신이다.”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 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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