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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칭기즈칸의 매 - 분노에 찬 결정은 말자 !- 이재달(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1-09-07 2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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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 한국 사회는 ‘분노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분노가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다. 홧김에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다반사다. 상대의 말을 꼬투리 삼아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극언을 퍼붓는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저지르는 범법행위는 거의 매일 뉴스에 등장한다. 사실 분노를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1000여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최고의 인물로 선정한 칭기즈칸조차 그랬다. 그가 분노에 찬 결정을 했다가 후회한 일화가 전해져 온다.

    어느 날 사냥을 하다가 갈증을 느껴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려고 하였다. 물잔을 들고 마시려던 순간 평소 아끼던 매가 날아와 물잔을 엎질렀다. 그렇게 하기를 세 번. 네 번째는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하고 매를 칼로 쳐서 죽여 버렸다. 그런 사이 물잔이 떠내려가 물이 고인 곳까지 올라가 보니 물속에 커다란 독사가 죽은 채 있었다. 칭기즈칸은 그때서야 매가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한 이유를 깨달았다. 죽은 매를 어루만지며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홧김에 결정을 하지 않겠다며 맹세하였다. 우리가 칭기즈칸의 매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매에 대한 칭기즈칸의 감정처럼 분노에 의해 섣불리 판단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 대혁명 시기의 홍위병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마오쩌둥의 정적이나 ‘구시대적’ 또는 ‘부르주아적’으로 간주되는 것을 철저히 파괴하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들이 낙인 찍은 사람은 개처럼 목줄을 채워 길거리로 끌고 다니며 수모를 안겼다. 그들만이 유일하고 새로운 혁명적 집단이라 자부하며 광란의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필자는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실태를 연구할 당시, 중국 최초의 민족대학인 연변대학에 대해 조선족 동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동포들에게 더없이 자랑스러운 연변대학의 기틀을 마련하고 총장까지 역임한 이가 림민호 선생이다. 그도 홍위병에게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서거하셨다고 한다. 림 선생처럼 문화 대혁명의 광풍에 목숨을 잃은 이가 중국 전역에서 170여만명에 이른다. 마오쩌둥 사후에 중국 공산당은 문화 대혁명을 ‘거대한 실패’로 인정하였다. 그렇지만 중국 사회에서 이를 정면으로 거론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다. 그런데 시진핑 체제에서 고중(한국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문화대혁명이 ‘나라와 인민에 심각한 재앙을 불렀다’는 내용을 추가하였다. 역사적 평가란 이처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하다.

    홍위병이 설쳤던 문화 대혁명 시절은 저마다의 가슴이 분노로 들끓었고 복수의 감정으로 뜨거웠다. 대중의 분노를 관리하는 것은 위정자의 역할이다. 분노를 잘 관리하면 역사 발전의 동인이 되지만, 잘못 관리하면 피범벅의 역사가 된다. 문재인 정부 시대도 바야흐로 막바지로 향한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분노 조절에 성공했을까? 평가는 진영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 성스러운 ‘촛불혁명’을 구현한 시대로 보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불붙은 연탄을 마구 집어던지던 시대로 본다. 언젠가는 이 시대에 대해 역사의 냉정한 평가가 있을 것이다.

    이재달(MBC경남 국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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