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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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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 냄비는 제비를 담고 있다- 박태현(시인)

  • 기사입력 : 2021-10-21 20: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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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시골에서도 제비 보기가 어렵다. 농약 사용과 환경 오염으로 먹잇감이 줄어든 데다, 초가집 흙벽이 사라지고 벽돌이나 시멘트 페인트 벽이 대부분이라, 둥지 지을 곳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돌담 밑에 광대나물이 돋고 명자꽃이 피자, 강남에서 부부 제비가 우리 집으로 날아왔다. 처마 밑을 여러 번 둘러본 다음, 벽 한 곳에다 부리에 진흙을 묻힌 채로 표시를 남기더니 얼마 뒤 거기에 신접 살림집을 짓기 시작한다.

    작은 부리로 팥알만큼 진흙을 물어다 한 층 또 한 층 쌓았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부리로 꾹, 꾹, 눌러 마른 지푸라기도 진흙 사이사이에 섞어 넣었다.

    필자는 집에 있을 때가 많아 틈만 나면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눈길이 쌓이고 바람이 섞여 둥지가 완성되었다.

    둥지 위는 곧바로 슬러브 지붕이라 한여름엔 더울 것 같아 차광막을 덮어 주었다. 혼자 사는 집에 생기를 부여하는 제비 둥지가 날마다 호흡을 할딱할딱한다. 어미 제비가 알을 품고 둥지 속에 있는 동안, 아비 제비는 둥지 앞 전깃줄에 앉아 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땡볕이 쏟아지면 땡볕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 어미 제비가 요기하러 둥지 밖으로 날아 나오면 그때야 아비 제비는 뒤따라 날아간다.

    알을 품은 지 보름쯤 지나자, 부부 제비가 부리로 먹이를 물고 와 새끼 제비들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부모 제비 날갯죽지 쉴 새 없다. 장맛비가 잠깐이라도 그치면, 마당 위로 골목으로 몸을 바짝 낮춰 날면서 작은 물잠자리를 잡아 새끼들에게 한결같이 먹였다.

    비가 내리는 꼭두새벽이었다. 자다 들으니 툭! 하는 소리가 어슴푸레 들렸다. 아침에 현관 출입문을 열자, 문 앞에 제비 둥지가 부서져 있다. 어쩌다가…. 부등깃 새끼 제비들을 조심스레 손으로 집어 드니, 벌써 세 마리의 영혼은 강남으로 날아갔는지 눈이 모두 닫혔다.

    그런데 어떻게 안 것일까? 갑자기 어디서 많은 제비가 날아와 젭젭젭… 거리며 새끼 제비 사체 위를 맴돌았다. 몇 차례 그렇게 빙빙 돌더니 가까운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공중에 걸린 제비들의 문상 행렬이 종족의 죽음을 하늘에다 알리는 것이 아닌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다. 뻣뻣해진 새끼 제비 세 마리가 내 안으로 들어온 날, 높은 언덕에 머리를 강남으로 나란히 묻어주었다. 젖은 흙을 한 삽 덮어 주었다. 이제 죽은 제비와 나의 벽이 사라졌다. 아슬한 이승의 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내 목숨의 둥지를 그들이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이를 어쩔 거나? 흙으로 당장 둥지를 만들어 줄 수도? 갑자기 생각한 것이 국수 담던 양은 냄비였다. 나는 냄비를 판자에 대어 나사못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냄비 속에 부서진 흙 둥지와 솜을 깔았다. 살아있는 새끼 제비 한 마리를 그 속에 넣어, 원래 둥지가 있던 자리에 얼른 붙여놓았다.

    둥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낯선 냄비가 붙어 있으니, 한동안 부모 제비는 냄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제 새끼 한 마리가 거기에 들어 있는 줄 알았던지, 오후부터 먹이를 부지런히 물어 날랐다. 슬픔은 울고 있는 게 아니라 새롭게 살아내는 거라고….

    박태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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