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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진실로 체험한다는 것 - 조재영 (창원시립마산문학관 학예사·시인)

  • 기사입력 : 2021-10-25 21: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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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재영 창원시립마산문학관학예사·시인

    십여 년 전에 인도 여행기로 널리 알려진 시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오지 마을에서 만난 노인 이야기였다.

    원주민 노인은 그 시인이 목에 걸고 있던 볼펜에 대해 질문을 했다. “당신이 목에 걸고 있는 것이 뭐요?” 볼펜이라고 대답하자 노인은 ‘왜 사람이 볼펜을 목에 걸고 있는지’에 대해 재차 물었다.

    그래서 자신은 작가이며, 무엇인가 잊지 않도록 적으려고 볼펜을 목에 걸고 다닌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진정한 작가라면 체험한 것만을 적어야 한다. 진실로 체험한 것은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어디엔가 적어 둘 필요가 없다.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를 적어 두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진실로 체험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들은 시인은 몹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노인의 그 말도 볼펜으로 적었다고 했다.

    이 강연을 들은 이후 나는 진실로 체험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노인의 말대로 우리의 체험이 진짜라면 잊히지 않는 것일까.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 우리가 원할 때 떠올려질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온몸을 자연의 시계에 맡기며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살았을 노인과 다양하고 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지냈을 시인의 경우 체험의 기준이 서로 달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진실로 체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몸이 현장에 있고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영혼까지도 오롯이 그 오감의 대열에 같이 동참해야 한다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밖에서 오거나 안에서 오는 강렬한 체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집단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되고 있지만 어떤 이는 자신과 별 상관이 없는 간접체험처럼 여기고 행동하는 이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언젠가 코로나 시대가 종식되고 다시 되돌아볼 때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 진실한 체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조재영 (창원시립마산문학관 학예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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