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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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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36년 ‘철도 외길’ 김용옥 창원중앙역장

한평생 플랫폼 지키는 우리 역장님은 ‘기차여행의 대부’

  • 기사입력 : 2022-01-12 21: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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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세계, 국가와 같은 큰 집단은 물론이거니와 가정·학교와 같은 작은 집단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더욱 사회적 동물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그럼 무엇일까. 헤아려보건대 바로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을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연결망’일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도 ‘교통망’은 단연 그 중심에 있고, 교통망 중에서도 ‘철도’는 인류의 교류와 소통을 상징하는 필수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여기 한 평생 철도(RAIL)를 지키면서 기차와 사람, 지역을 연결하는 것을 ‘내 일’로 삼는 사람이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역 플랫폼을 지키면서, 온라인에서는 그 자신이 기차여행객들의 플랫폼이기도 한 김용옥(55) 창원중앙역장이다.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이 거울을 보며 모자를 고쳐 쓰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이 거울을 보며 모자를 고쳐 쓰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는 ‘연결하는 사람’= 김용옥 역장은 1986년 만19세에 지금은 경전철역으로 바뀐 동해남부선 남창역에서 철도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2004년 개통한 고속철도(KTX)의 개통 전반 실무를 맡았다. 2005년 공기업으로 전환된 이후로도 현재까지 36년째 철길 위에서만 살아왔는데, 코레일 동남권관광벨트 추진단장을 맡아 지난 2013년 남도해안관광열차, 일명 ‘S트레인’ 개통에 한몫했다. 부산에서 출발해 진주와 하동 순천을 거쳐 여수, 보성까지 매일 운행하는 S트레인은 기차관광 활성화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과 지역경제 활성화 연결을 꾀하는 중요한 시도였다.

    김 역장은 이때 ‘역 중심 환승시스템’과 지자체 관광명소를 연결하는데 힘을 쏟아부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행의 화두는 단체여행에서 개별여행으로 전환됐기에 이 추세에 맞춰 철도역과 개별여행객을 연결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진영역에 내려서 봉하마을까지 걸어서 가도 되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게끔 김해시와 자전거도로 조성을 추진했고, 마산역에는 기차체험박물관을 여는 한편 진주역에는 진주시와 연계해 유등 만들기 등을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한 게 그 예다.

    지난 6일 창원중앙역 역무실에서 만난 김 역장은 “단순히 지자체와 업무협약만 맺는 게 아니라 개별여행 추세에 맞춰 대중교통과의 연계를 늘리는 방법을 우선 추진하는 한편 기차에서 내려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인근 지역을 여행할 수 있는 도보·자전거 코스를 개발한 시기다”며 “지자체 공무원들이 나를 많이 귀찮아했다”고 멋쩍어했다.

    김 역장은 전남이 고향이지만 경남과 더 지리적으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2012년 창원역에서 첫 역장 직함을 단 뒤로 밀양부역장, 물금역장, 진영역장, 창원중앙역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역장을 지낸 역에서 또다시 역장을 하는 경우는 드문데 창원중앙역장으로는 이번이 두 번째 근무다. 부산역, 울산역 다음으로 동남권에서 여객이 많은 격지이지만 자타공인 자신과 잘 맞는 역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역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역을 지역사회에 활짝 열어젖혔다. 창원중앙역장으로 첫 부임한 지난 2015년 역명에 이름을 함께 쓰는 창원대와의 협업이 대표적인데, 대합실 옆 빈 공간을 활용해 음악공연을 펼치고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꿨다. 특히 코로나19 이전 음악 공연장에서는 철도이용객이 많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창원대 음악과 학생들의 현악 4중주·성악 등 클래식 공연이 펼쳐져 시민들의 발길을 끌기도 했다. 또 도시 소외계층 아동과 고령화돼 가고 있는 농촌 노인 세대를 연결하는 사회공헌활동인 ‘외갓집 가는길’ 행사도 이때 열었다.

    1986년 동해남부선 남창역서 철도인 첫발
    2004년 개통한 고속철도 개통 전반 실무
    코레일 동남권관광벨트 추진단장 맡아
    역·지역사회 연계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
    2013년 남도해안관광열차 개통에도 한몫

    기차여행 플랫폼 ‘레일 코리아’ 설립·총괄
    크리에이터·매거진 기자 등 50여명 연결해
    철도역 중심 체험·숙박·맛집·축제 등 소개
    온라인 커뮤니티 구독자 수 21만명 넘어

    “10여년 전부터 밀양 등서 1만 그루 식재
    죽기 전까지 나무 10만 그루 심는 게 목표
    기차와 사람, 지역 연결하는 게 ‘내 일’
    유라시아 횡단 나만의 기차여행 하고파”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성승건 기자/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성승건 기자/

    ◇그는 ‘기차여행의 대부’= 김 역장의 진가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역’에서 더 발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16년부터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 ‘대한민국 FIT 기차여행 플랫폼 레일 코리아’를 만들어 총괄 운영하는 ‘역장’ 역할도 하고 있다. 김 역장을 비롯해 철도여행자, 매거진 기자, 여행크리에이터 등 인플루언서 50명이 레일 코리아를 플랫폼으로 50개 페이지를 연결해 만들어 가는 게 이 커뮤니티의 가장 큰 특징이다. 버스, 전철, 카셰어링, 자전거, 항공, 선박 등 철도역 중심의 환승과 지자체 제휴를 통한 투어·체험·숙박·맛집·축제 등 ‘기차여행의 모든 것’이 망라돼 있다.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이 휴대전화로 기차여행 플랫폼 ‘레일 코리아’를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이 휴대전화로 기차여행 플랫폼 ‘레일 코리아’를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레일 코리아의 구독자수는 21만8500여명(12일 기준). 하루 노출수와 1개월 노출수가 각각 8만회, 198만회에 이르는 등 기차여행을 테마로 하는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 중 압도적인 1등이다. 구독자들 중에선 그를 ‘기차여행의 대부’라 부르는 이도 있다.

    인기 비결이 뭔지 묻는 질문에 그는 ‘다양성’과 ‘순수성’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 역장은 “전국에서 활동하는 20대부터 60대까지의 다양한 여행경력을 가진 여행 크리에이터가 다양한 곳을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하게 소개하는 게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다”며 “단체여행객을 모객해 수익을 창출하거나 개인사업자의 상품을 광고하지 않는 원칙, 구독자가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게 짧은 글 중심으로 쓰는 전략도 한몫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앞으로도 이 플랫폼을 잘 지키는 게 그의 역할일 터. 그의 연결이 지역균형발전에도 밑거름이 된다고 그는 믿는다. 김 역장이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공간으로 계속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김 역장은 프랑스의 장 지오노가 쓴 책 ‘나무를 심는 사람’의 주인공처럼 죽기 전 나무 10만그루를 심는 게 목표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선 ‘탄소 중립’이라는 연결고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밀양과 제주 등지에서 약 1만그루의 나무를 꾸준히 심고 있다.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이 나무를 심으며 미소 짓고 있다./김용욱 창원중앙역장/
    김용옥 창원중앙역장이 나무를 심으며 미소 짓고 있다./김용욱 창원중앙역장/

    ◇그의 꿈도 ‘연결하는 일’= 김 역장을 만나기 하루 전날인 지난 5일. 국토교통부는 남한 최북단역인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동해선 강릉~제진 구간 111.74㎞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 착공식을 열었다. 제진역은 지난 2002년 남북 간 합의로 2007년에 북한의 감호역과 연결된 곳이다. 강릉~제진 구간이 완공되면 동해선은 동해를 따라 부산에서 포항·강릉·제진을 지나고, 감호·금강산·원산·나진을 거쳐 두만강역까지 연결된다. 한반도라는 공간을 넘어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과 연결해 부산에서 유럽까지 직행할 수 있다.

    기차와 사람, 지역을 그물망처럼 연결해온 뼛속까지 철도인이자 철도여행자인 그에게 남은 꿈을 물었다. 역시나 철도와 연결돼 있었다. 그가 역장실 벽면에 걸린 유라시아 대륙 철도 노선이 그려져 있는 세계지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대륙철도까지 이어져 저도 죽기 전에 꼭 기차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저만의 기차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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