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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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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2022 현장] ⑤ 이동목욕차 요양보호사

목욕탕이 달려간다, 어르신들 지친 심신 씻기러
노래도 불러주고 투정도 받아주죠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이잖아요

  • 기사입력 : 2022-02-07 08: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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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한 주택가에서 요양보호사들이 한 노인을 부축하고 ‘이동 목욕차’로 들어가고 있다./김승권 기자/
    3일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한 주택가에서 요양보호사들이 한 노인을 부축하고 ‘이동 목욕차’로 들어가고 있다./김승권 기자/

    “어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새해 첫 목욕 얼른 하러 갑시다~”

    지난 3일 아침 7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의 한 아파트 단지. 동이 트기 직전이라 어두운 주변과 달리, 박남례(80·여·가명)씨를 태운 이동목욕차 내부는 ‘탁’ 켜진 주황색 조명이 어둠을 삼켰다. 따뜻한 빛이 비치는 작은 창문 사이로 마스크를 쓴 요양보호사가 분주히 움직였다. 이윽고 목욕차 위로 뜨끈뜨끈한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창문에도 서서히 하얀 김이 서려졌다.

    ◇하루 7~9명 노인 이용… 1명당 1시간 목욕= 방문목욕은 몸이 불편한 만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민간부문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제공하는 방문요양서비스다. 가정을 방문해 욕실에서 목욕을 돕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동목욕차를 이용한다. 경남에는 223곳 장기요양기관에서 이동목욕차를 운영하고 있다.

    창원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름다운재가노인복지센터는 650L 용량의 물탱크를 장착한 이동목욕차 2대를 운영하고 있다. 차량별로 요양보호사 2명과 운전기사 1명이 함께한다. 기자가 이날 동행한 1호차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목욕대상자 9명을 만났다. 보통은 하루 7~8명을 찾아간다.

    이날 만난 백금자·최경화(64·여) 요양보호사는 방문목욕을 2~3년가량 해온 베테랑이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목욕대상자를 차량으로 모셔오는 일이다. 이날 첫 대상자인 박남례 할머니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자칫 걱정도 됐지만, 두 요양보호사는 능숙하게 할머니를 들어 휠체어에 앉힌 후 목욕차로 향했다.

    박 할머니가 목욕차 내부 욕조에 앉자 두 요양보호사는 곧장 체온과 혈압 측정에 나섰다. 활동이 적은 노인들이 갑작스럽게 움직이면 혈압이 상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혈압이 높게 측정될 경우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그날 목욕을 취소한다.

    목욕차 내부는 2평 남짓한 공간에 성인 한명을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튜브식 욕조와 샤워기, 세면도구 등이 준비돼 있다. 체온·혈압이 정상치로 측정되자 요양보호사는 차량 문을 닫고 1시간가량 목욕을 시작했다.

    백금자·최경화 요양보호사가 노인을 부축해 이동 목욕차로 안내하고 있다.
    백금자·최경화 요양보호사가 노인을 부축해 이동 목욕차로 안내하고 있다.

    ◇이용 노인·가족 만족도 높아= 목욕을 마친 박남례 할머니는 기자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휠체어에 탄 채 집으로 향하는 박 할머니에게 소감을 묻자 “개운해서 기분이 너무 좋아”라는 말이 돌아왔다. 사실 박 할머니는 아침 일찍 요양보호사들이 왔을 때 잠이 덜 깨 “씻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박 할머니의 남편 김삼동씨는 2년 전 방문목욕 서비스를 신청했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돌보는 과정에서 청결 유지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은 게 결정적인 이유다. 김씨는 “나도 나이가 들다 보니 홀로 아내를 씻기는 데에 힘이 좀 달린다”며 “두 요양보호사가 항상 웃으면서 맞아주시고 돈 부담도 적으니 계속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목욕차 방문목욕은 1~5등급의 장기요양등급이 있는 노인이면 1만원 상당의 본인 부담금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나머지 6만원 상당의 금액은 국비로 지원된다.

    이날 두 번째로 이동목욕차를 이용한 강흥련(85) 할아버지와 아내 김정임(81)씨도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씨는 “남편이 몸이 안 좋다 보니 가끔씩 대소변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덩치가 커 혼자서는 주변 청소나 옷 갈아입히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며 요양보호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장기요양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문목욕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85.1%로 다른 서비스인 방문요양(79.2%), 방문간호(69.5%) 보다도 높다.

    백금자 요양보호사는 “많은 어르신들이 목욕하자고 찾아가면 움직이는 걸 꺼려해서 투정 부리는 경우도 있는데, 막상 하시면 만족하시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며 “꾸준히 목욕하시는 분들 중에는 몸이 점점 괜찮아지신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동 목욕차 내부 모습. 2평 남짓한 공간에 튜브식 욕조, 샤워기 등이 갖춰져 있다.
    이동 목욕차 내부 모습. 2평 남짓한 공간에 튜브식 욕조, 샤워기 등이 갖춰져 있다.

    ◇코로나 장기화에도 꾸준한 수요= 이동목욕차를 이용한 방문목욕은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도 꾸준한 수요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요양병원, 경로당 등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면서 노인들의 활동 반경은 더욱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질 방문요양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고, 목욕도 병행하는 방문목욕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것이다.

    아름다운재가노인복지센터는 현재 120명의 방문목욕 대상자를 관리한다. 신청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세다. 이날 만난 목욕대상자들도 코로나19 발생 전후 서비스를 신청한 후 이어가고 있다.

    강호순 아름다운재가노인복지센터장은 “몸이 편찮은 어르신들은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을 뿐 특별히 하는 활동이 없는데, 잠시나마 몸을 풀 수 있는 목욕에 만족하는 것 같다”라면서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 주는 요양보호사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쉴 틈 없지만 그만큼 보람찬 일= 이날 방문목욕은 오전 7시 시작했지만 준비 작업은 그보다 1시간 일찍 시작된다. 1시간 전 안창석 운전기사는 따뜻한 물을 제공하기 위해 센터에서 목욕차 물탱크를 채운 후 보일러를 가동시켰다. 같은 시간 백금자·최경화 요양보호사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이들은 쉴 틈 없이 목욕대상자 4명을 찾아갔다. 총 5시간 동안 목욕에 총 4시간, 이동에 1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네 번째 목욕대상자는 10여분간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작은 소동도 있었다.

    “많은 어르신들이 치매를 앓고 있는데, 한순간에 감정이 변해서 곤란한 상황도 많이 발생하죠. 그런 분들은 최대한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옛날 노래도 부르면서 흥을 돋우기도 해요.”

    오후 12시. 목욕을 끝내고 잠깐의 쉬는 시간. 인터뷰에 응한 백금자·최경화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이 불편해하지 않는 목욕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성 목욕대상자의 경우 쑥스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에는 수건을 몸에 덮어주며 최대한 익숙해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고 한다. 이외에도 목욕 과정에서 일어나는 어르신들의 생리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아무렇지 않게 처리해준다고 한다.

    “힘든 일 일수록 더 보람 있는 일이잖아요.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이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올해에는 코로나가 종식돼 마스크를 벗고 어르신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목욕봉사를 하고 싶네요.”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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