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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독립유공자 인정받을까

마산 출신 여성 항일독립운동가
오는 광복절 맞춰 서훈 재심의
북한 정부수립 기여 행적 등 쟁점

  • 기사입력 : 2022-03-01 20: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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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 출신 여성 항일독립운동가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국가보훈처는 오는 8·15 광복절에 맞춰 김명시 장군의 서훈 여부 결정을 위한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생전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한 행적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명시 장군
    김명시 장군

    ◇3년째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민간시민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해 11월 김명시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재심의를 국가보훈처에 신청해 심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1일 밝혔다.

    김명시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은 2019년부터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019년 1월 최초로 포상 신청을 했지만, 그해 11월 사망 경위 등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불가 통지가 내려졌다. 이어 지난해 7월 자료를 보완해 2차 신청을 했지만 한 달 만에 같은 이유로 불가 통지를 받았지만 재심의를 요청했고, 보훈처가 이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김명시 장군은 19세 때 모스크바 공산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고, 1927년 중국 상해로 파견돼 대만·필리핀·베트남 등지 독립운동가와 함께 항일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30년 하얼빈 일본영사관을 공격해 큰 타격을 줬고, 1932년 귀국해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39년 신의주 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한 이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화북지역에서 조선의용군 부대 지휘관을 맡아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재심의 신청이 들어와 관련 자료들을 조사 중이다”며 “오는 8·15 광복절을 계기로 열릴 심사 때 김명시 장군 등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이력·행적 불분명 걸림돌= 독립유공자 인정 여부를 결정할 쟁점은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 활동 등 사회주의 이력이다. 앞선 두 차례 심의가 통과되지 못한 것에는 이러한 이유도 포함돼 있다. 국가보훈처는 김명시 장군이 사망 당시 직책이 ‘북로당 중앙위원’으로 발표된 점을 이유로 김 장군이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 서훈 불가 판정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열린사회희망연대 측은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신미리애국열사릉’ 명단에 김 장군이 없고, 1991년 국토통일원 북로당 창립대회보고서 명단에도 김 장군의 이름이 없는 근거로 서훈 인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김숙연 열린희망연대 사무처장은 “광복 후 행적은 불분명하지만 막연하게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했다고 단정해선 안된다”며 “김명시 장군은 변경된 독립유공자 심사기준에도 충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8년 광복 이후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한 경우가 아니면 사안별로 판단하도록 독립유공자 심사기준을 변경한 바 있다.

    김 장군의 유족들은 항일 투쟁을 했던 공이 사회주의 활동 이력에 가려졌다며 서훈을 바라고 있다. 유족 김미라(63·조카)씨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친일 경찰의 주도하에 좌익 숙청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도피 생활을 해 행적을 찾기 힘들다.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사회주의 활동을 한 이력에 가려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필두(84·외사촌) 씨 등 유족들은 “김명시라는 이름은 저희들 가슴속에서만 담아왔다”며 “지금이라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하고 후손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경남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운동을 펼치다 옥중에서 순국한 주기철 목사(1897~1944)를 비롯해 1333명의 독립유공자가 있다.

    한편 의열단장을 맡아 항일운동을 했지만,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약산 김원봉(1898~1958)도 논란으로 아직 서훈 받지 못했다.

    박준혁 수습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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